[나기리마] 달밤의 고백
W. 손도라
“있지, 있지! 다들 ‘달’ 하면 뭐가 먼저 떠올라?”
다소 분주해보였던 야야가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야야는 이번 발레공연에서 실로 오랜만에 주조연 배역을 받았다. 주인공의 성장을 도와주는 신비로운 달의 정령. 귀여운 의상과 극에서 상당한 비중을 자랑하는 주조연 배역이라는 타이틀은 야야의 사기를 한껏 올리기에 충분했다.
“달이라면 보름달? 초승달도 예쁘고···.”
“아니-. 그런 거 말고 분위기나 성격 그런 거 있잖아!”
덩달아 심오해진 아무는 미간을 찌푸리며 달과 연관되는 모든 단어들을 방출했다.
“‘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라···. 밝고 아름다운, 하늘에 떠 있는. 아악, 내 창의력이 이렇게 떨어졌나?!”
고민의 파장은 야야에서 아무로, 두 명에서 세 명으로 점차 넓어졌다. 다소 부산스러운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기히코는 조용히 웃었다. 그는 배역을 처음 해석할 때는 먼저 단순하게 그려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해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단순하게 하래도 누구나 처음은 어려운 법. 단순한 것을 단순하게 보지 못하고, 머리가 새하얘지다가도 다시 쓸데없는 고민에 불타오르는 처음의 매너리즘은 그것이 익숙하지 않은 초보들에게 닥치는 첫 시련이었다. 적어도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연기를 접했던 나기히코에 비하면 야야는 딱 병아리 수준이기에 머리에 쥐가 나는 상황을 피하기란 역부족이었다.
“아아, 나기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어. 그럼 뭔가 풀리지 않을까?”
“단순하게 생각하라잖아. 신비롭고 아름다운 달의 정령.”
파장에 영향을 받지 않은 리마는 전문성은 없지만 연기력이라면 가디언 내에서 나기히코 다음으로 수준급이었다. 아무는 리마라면 머리를 싸매진 않을 거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야야는 볼에 바람을 넣으며 책상에 늘어졌다. 리마는 야야의 칭얼거림이 익숙해진 지 오래였고, 그저 작은 입으로 홍차를 홀짝일 뿐이었다. 복잡한 고민에 괜히 심통이 난 야야는 늘어진 채로 고개를 돌려 리마의 티타임을 가로막았다.
“언니도 뭐 하나 얘기 좀 해 봐. 언니만 얘기 안 했어!”
“하여간···. 뭐, 분위기라면 달밤의 고백이라든지.”
“···달밤의 고백?”
리마는 순간 방심했다는 듯 움직임을 멈추었다. 당혹감이 만연한 얼굴을 빠르게 수습했지만 이미 덜미를 잡힌 모양이었다. 리마는 남몰래 숨을 고르며 침착함을 유지했다.
“‘달밤의 고백’이라니 완전 로맨틱하잖아! 어제 본 만화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왔는데! 언니도 봤구나~”
“그냥, 구독하는 잡지에 있어서 한 번 봤어.”
다행히도 대화 주제는 순식간에 만화책으로 기울었다. 리마는 속으로 달밤의 고백을 연출한 만화가에게 감사 인사를 보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딱 하나.
“그러네. 꽤나 인상 깊은 연출이었나 봐?”
나기히코는 얄궂은 시선을 흘렸다. 저 표정은 분명 리마만이 알아볼 수 있는 일종의 신호였다. 리마는 입술에 힘을 주고 달아오르는 얼굴을 주체하기 위해 온 힘을 가했다. 몇 번이나 본 그의 태연한 표정은 평소보다 몇 배로 자극적이었다.
의식의 흐름이란 가끔 이성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뇌를 지배하기도 한다. 리마의 머릿속은 리마의 통제를 한참 벗어나 점점 그 날의 기억을 재생시켰다. 달이 아름다웠던 그 날, 달빛에 은은히 젖은 그의 얼굴은 누가 봐도 아름답다고 말했을 것이다. 천천히 움직이는 입술과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봤던 올곧은 눈은 그의 마음이 리마에게 무사히 전해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 마음을 잇는 대답은.
“리마? 무슨 생각해?”
이렇게 허무하게 들키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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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하는 키워드 연성
'달'이라는 키워드를 받아 짧게 끄적여봤습니다 힣히 키워드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달이 뜨지 않아서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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