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캐릭체인지(Shugo Chara!)/연성

[이쿠아무] 가을의 단풍색

손도라/핸디 2019. 9. 27. 23:14

 

 

 

 

[이쿠아무] 가을의 단풍색

 

 

 

은은하게 광이 나는 구두 앞코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살풋 발을 움직이니 부드러운 가을바람이 대답이라도 해주는 듯 옆머리를 쓸고 갔다. 아무는 팔을 쭉 뻗어 크게 기지개를 켰다. 힘찬 기지개 뒤엔 무력감이 뒤를 이었다. 바람결에 간간이 들리는 낙엽소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늘어져있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계절에 몸을 맡기니 좀 전까지 꿀꿀했던 기분이 사르륵 녹아내렸다. 지금 이 순간은 그 누구보다도 히나모리 아무에게 꼭 필요했던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느끼는 감정에 보답이라도 하는지 가을바람은 조용히 대답했다. 치맛자락 위로 날아온 단풍잎 하나는 감성의 정점을 찍게 해주었다.

 

“이제 정말 가을이구나. 가을은 예술의 계절이지.”

“그리고 군고구마가 맛있는 계절!”

“군고구마는 따뜻하고 포슬포슬하니 가을 간식으로 제격이에요.”

“아무가 시간을 착각한 덕에 이렇게 기분 좋은 가을을 즐기게 됐네.”

 

순서대로 한 마디씩 던지는 걸 보니 모두 한 사람에게서 태어난 존재들이 분명했다. 천상의 호흡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무르익은 가을에 의식을 흘려보내던 수호캐릭터들은 본의 아니게 아무의 감성을 어그러트렸다. 아무는 파우치 안에서 가을을 즐기던 수호캐릭터들을 노려보았다. 겨우 기분 전환 시켜놨더니 하는 말들 좀 보게. 괜스레 심통이 난 아무는 파우치의 덮개를 무심하게 툭 건드렸다. 갑자기 눈앞이 파우치의 체크무늬로 가득 차게 된 수호캐릭터들은 돌아가며 무슨 짓이냐고 항의했다. 너넨 즐겁니. 나는 시간이 붕 떴는데. 아무는 아무 말 없이 들썩이는 파우치를 응시했다.

오늘은 이쿠토가 잠시 귀국하는 날이었다. 정확히는 오후 11시 도착. 이쿠토가 보내준 친절한 메시지에도, 우타우의 통보 같은 언질에도 분명 오후 11시라고 적혀있었다. 곧 만날 수 있다는 그의 메시지에 너무 설렌 탓이었는지 그만 터무니없는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오후 11시라면 절대로 만날 수 없는 늦은 시간일뿐더러 지금부터 기다린다 해도 무려 9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간격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현실도피를 하려 밥도 먹고 쇼핑센터 구경도 했지만 갑작스레 붕 뜬 시간과 감정을 메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오랜만에 힘을 줘서 꾸민 차림새도 무의미하게 변했다. 

그렇게 벤치에 앉은 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무는 자신에게 다가와준 단풍잎을 눈앞에 들어보이고서 이리저리 둘려보았다. 깃털처럼 가벼운 단풍잎은 아무가 가하는 압력을 따라 회전문처럼 앞뒤를 번갈아 보여주었다. 흠집 하나 없는 고운 빨간빛에 적당한 크기. 불현듯 어릴 적에 책갈피를 만들겠다며 낙엽더미를 이곳저곳 쑤시고 다녔던 날이 떠올랐다. 기억하기로는 그렇게 해서 겨우 찾은 예쁜 낙엽들보다도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이 단풍잎이 훨씬 깔끔하고 예뻤다. 예쁜 걸 보면 가만히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지 않나. '이것이 예술의 시각적 효과다.' 언젠가 미키가 했던 일장연설 중 일부가 생각났다.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내용이 지금 떠오르는 게 다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했다. 미키가 알면 아마 자신의 금 같은 담론을 무시한 거냐며 성을 냈을 것이다. 아무는 그 모습을 상상하며 퍽 웃음을 지었다.

 

“뭐가 그렇게 웃겨.”

 

삽시간에 단풍잎에 집중되어있던 시선이 옮겨졌다. 턱에는 익숙한 손길이 느껴졌다. 지금 아무의 시야에는 그토록 기다렸던 얼굴로 가득 채워져있었다. 아무는 멍하니 그의 얼굴을 응시하다가 이내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쿠토?!”

“그렇게 혼자 실실 웃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걸.”

“남이사, 무슨 상관이래. 그보다 밤에 온다며!”

“네가 기다리고 있대서.”

“내가 기다리고 있는 걸 어떻게 알아?”

“우타우가 그러던데. 너 오전부터 나가는 것 같다고.”

 

이쿠토는 그렇게 말하며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내일 아침엔 추울까?···(중략)···알려줘서 고마워, 우타우^0^)/’ 아무는 눈을 비비고 재차 확인했다. 여러 번 확인해봐도 전날 자신이 우타우에게 보낸 메시지가 확실했다. 우타우의 연습 중간에 나눴던 메시지라 우타우의 답장은 그 다음 날 오전에서야 받아볼 수 있었고 그땐 이미 아무가 약속장소 도착 10분 전을 암두고 있던 순간이었다. 여러모로 좋지 않은 타이밍이었다.

 

"그래도 이거 하나 보고 빨리 왔다기엔 부족하지 않나?"

“그런가. 그보다 여전히 귀여운 이모티콘이네.”

“그, 그게 뭐 어때서!”

“그래서? 벌써부터 차려입고 나와있는 이유는?”

“···야, 약속이 있었던 것뿐이야! 너 기다린 거 아니거든.”

“그래?”

 

아무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쿠토의 얼굴에선 특유의 의미심장한 웃음이 지워지질 않았다. 아무 또한 미처 감출 수 없는 부끄러움에 열기를 느꼈다.

 

“그거 너 닮았네.”

“뭐가.”

“지금 네 얼굴색이랑 똑같잖아. 단풍잎.”

"무슨 소리야! 어디가 똑같···."

"예쁘다."

 

아무의 얼굴은 혼란스러움과 창피함으로 더욱 더 붉게 물들었다. 오늘도 이쿠토의 장난 섞인 웃음에 또 한 번 맥없이 당하고 말았다. 언제나도 그랬지만 오늘은 더욱이 오랜만에 보는 그의 얼굴이기에 어쩔 수 없이 백기를 들게 된 것은 예정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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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즉석으로 받은 키워드 '단풍잎'으로 짧게 써봤습니다.

이쿠아무를 연성해야지 해야지 하고 떠오르는 게 없어서 미뤘는데 키워드 받자마자 이건 이쿠아무다 싶어서 술술 쓸 수 있었네요

역시 특석에서 제공된 키워드로 하는 연성 즐거워.... 짜릿해... 다음에도 하고 싶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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