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캐릭체인지(Shugo Chara!)/연성

[나기리마] 만나고 싶은

손도라/핸디 2019. 12. 15. 21:42

 

 

 

 

[나기리마] 만나고 싶은

W. 손도라

 

 

 

 

한 달 전부터 계획한 데이트였다. 본격적으로 순회공연에 돌입한 나기히코는 한 달에 한 번 만나기도 빠듯하게 바빠졌다. 그 중 중요도가 높은 공연을 앞둔 시기에는 무려 두 달 만에 만난 적도 있었다. 서로 사는 곳이 편도 4시간을 넘어가는 것도 아닌데 처지는 영락없는 롱디커플이었다. 아무튼 오늘은 그 귀하디 귀한 데이트 당일이었다. 예정대로라면 지금은 각광 받는 야외 테마 전시회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을 것이다. 창문을 열고 손을 살짝 뻗으니 삽시간에 흠뻑 젖었다. 짙은 시멘트 벽돌처럼 칙칙한 하늘은 앞으로 두세 시간은 더 퍼붓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 같았다. 장마철이었지만 일기예보를 시시때때로 확인하며 안심했던 날이었다. 야속하게도 오늘은 일기예보를 빗나가는 동시에 올해 최대 강수량을 자랑하는 날이 되었다. 리마는 우산을 든 시민들을 비춰주는 뉴스를 보고는 채널을 돌렸다.

아침에 눈을 떠서 창밖을 봤을 때만 해도 큰 걱정은 없었다. 비가 온다고 데이트를 안 하는 커플이 세상에 어디 있나. 있다면 권태기이거나 곧 깨질 예정일 것이다. 리마는 전날 밤까지 나눴던 애정 가득한 메시지를 떠올리며 미리 봐둔 옷과 장신구를 몸에 옮겼다. 아마 센스 있는 나의 남자친구는 다른 대안을 생각해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헤어스타일을 이리저리 바꿔보며 고민을 할 때 핸드폰 벨소리가 반갑게 들려왔다. 나기히코는 사뭇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비가 와서 무대 장치에 결함이 생겼대. 연출을 바꿔야 할 정도라 내가 가봐야 할 것 같아.’ 그리고 이어지는 진심 어린 사과에 차마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나기히코 또한 오늘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알고 있었다. 유명한 전시회 따위 다음에 보면 그만이야. 새로 산 옷도 다른 날 입고 나가면 돼. 영영 못 보는 것도 아니니까. 화장대 위에는 미처 달지 못한 노란색 리본이 단정하지 못하게 널브러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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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기히코는 전화 이후로 틈틈이 메시지를 보냈다. 정말 괜찮은 거지? 미안해. 계속되는 안부 메시지에 아무렇지 않은 척 무대나 신경 쓰라고 살짝 튕겼다. 안부 뒤에는 서로 지금 뭐 하고 있는지 등을 보고하며, 바꿀 연출과 소품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일을 보는 중간중간 메시지를 하기에 답장을 보내는 간격은 결코 짧지 않았지만 계속 신경 써주고 있다는 마음은 여실히 보였다. 리마는 완전히 왼쪽으로 넘어간 시계침들과 창밖을 번갈아보았다. 빗줄기는 많이 약해졌지만 여전히 창문에 새로운 물방울들이 맺혔다.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늘 그랬지만 오늘은 유독 집안이 차갑게 느껴졌다. 어머니와 틀에 박힌 통화를 마친 뒤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에 답장을 했다.

 

‘오늘도 늦으신대. 항상 그러셨으니까.’

‘저녁은 먹었어?’

 

아니, 아직. 배고픈 것도 있고 있었다. 하루 종일 뭔가 굵직한 일을 한 건 아니지만 무언가를 잊기 위해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간결한 답문을 보냈다. 보낸 지 몇 초 지나지도 않았는데 핸드폰 화면이 멋대로 바뀌었다. 리마는 발신자 표시를 보고는 생각했다. 답신을 전화로 하려는 걸까.

 

“여보세요? 다 끝났어? 늦게 끝났네.”

“나 문 좀 열어줘.”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낮에 들었던 목소리 톤과는 다른 평소의 나기히코. 그보다도 좀 더 들뜬 톤이었던 것도 같다.

 

“집 앞이야. 저녁 사왔는데 열어주면 안 될까?”

 

리마는 앞으로 평생 간직할 비밀이 또 하나 생겼다. 집 앞이라는 말을 듣기 전에, 다짜고짜 문을 열어달라는 말에 이미 현관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절대 그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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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받아서 연성하는 거 너무 재밌당

이번에 받은 키워드는 '장마'

참고로 둘 다 성인이라는 가정 하에 썼고 따로 명시는 안 했는데 리마 어머니는 바로 타지 출장 가셨어요 이 날 외박하실 거임ㅅㄱ 내가 보낸 출장이니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음 께헤헼ㅋ

 

이 이야기의 뒷 상황으로 리마가 문 열어주자마자 포옥 안기는 거 보고싶다.

한 손엔 리마 먹일 음식, 다른 한 손엔 우산을 들고 있어서 나기히코는 못 움직인다.

밖이 춥고 비도 오니까 일단 들어가자고 어르는 나기히코.

집안 들어가서도 나기히코의 손이 비자마자 거의 매달리다시피 안기는 리마가 보고싶은데 여기까지 쓸 기력은 안 돼 그냥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