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기] 사탕
W. 손도라
일요일 오후 3시, 애매하다면 애매한 시간,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오후의 일부인 시각이다. 가족들은 모두 외출을 한 탓에 혼자 집에 남게 되었다. 그렇기에 집안이 조용한 건 아주 당연한 현상인데 왠지 이런 고요함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공부를 하기엔 최적의 환경인데도 도통 책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집중력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되는 스트레칭을 하고 잠시 가벼운 독서를 하는 등 갖은 방법을 다 써봤지만 오히려 머릿속에서는 이 상황과 전혀 관련 없는 생각만이 줄줄이 늘어가고 있었다.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다 싶어 하는 수 없이 책을 덮고 제자리에 꽂아두는데 문득 그 책상 가장자리에 놓인 사탕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막 개업한 카페에서 커피를 사고 받아온 덤이었다. 딸기 사탕 세 개가 투명한 봉지 안에 가지런히 들어있었고 봉지 안에는 카페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깔끔한 디자인의 명함이 같이 들어있었다. 기억하기로는 네다섯 개의 맛이 있는 과일 사탕인데 어째선지 내가 받아온 사탕은 전부 딸기 사탕이었다. 두 개도 아닌 세 개. 의도가 아니라면 한 종류만 들어있기도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한 개를 꺼내 봉지를 까 입 안에 넣었다. 달달한 딸기향이 입 안 가득 퍼졌다. 딸기보단 박하나 레몬맛을 선호하지만 가끔은 이런 맛도 좋다. 더군다나 딸기라면 누구 덕에 익숙하니까. 사탕으로 입 안은 조금 즐거워졌지만 그 외에 다른 곳은 할 일 없이 의자에 모든 것을 맡기고 늘어져있었다. 규칙적인 시계침 소리를 들으며 입 안의 사탕을 녹이는 데에 열중하고 있던 그 때 시계침 소리, 사탕 굴리는 소리와는 비교도 안 되는 크기로 전화벨이 울려 퍼져 온 신경에 바늘이 꽂힌 듯한 충격이 찾아왔다.
"여보세요? 레이쨩? 지금 전화 가능해?"
"네, 가능해요. 무슨 일이시, 컥."
급하게 전화를 받은 탓에 혀를 잘못 둬서 입에 물고 있던 사탕이 목구멍으로 아슬아슬하게 넘어갔다왔다. 하마터면 딸기 사탕 하나 때문에 생을 접은 사람이 될 뻔했다. 부자연스러운 말에 걱정 섞인 목소리로 무슨 일이냐 묻는 나기사를 안심시켰다. 딸기 사탕을 먹고 있었다 하면 분명 딸기맛이라는 것에 집중을 했을 텐데 오늘은 딸기가 아닌 사탕 쪽으로 화제가 풀어졌다. 둘째 누나가 남자친구에게 사탕을 한아름 받아왔는데 자신에겐 단 한 개도 주지 않고 있다며 너무하다고 칭얼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화이트데이였지. 그래서 사탕이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며 한 자리가 빈 사탕 봉지를 만지작거렸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받은 거라 아껴먹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에에, 역시 그런 거겠지? 그으래애도 사탕 먹고 싶다아."
몇 분 전의 자신처럼 늘어지는 마지막 문장이 퍽 귀여워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레이쨩, 지금 웃은 거야? 왜?"
"아, 아닙니다. 안 웃었어요."
"내가 들었는데? 방금 웃었잖아! 사탕도 못 먹고 레이쨩한테 비웃음 받고, 아아."
"비웃음이라뇨, 저는...!"
"레이쨩, 우리 같이 저녁 먹을래?
"네?"
이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유는 이 사람이라 그런 걸까. 어쩐지 또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빨리 답하지 않자 앞서 나왔었던 말 늘이기 스킬을 선보이며 같이 저녁을 먹자고 재차 물어왔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화지만 그 모든 게 자연스럽고 달콤하다.
"그거 지금 심심해서 부르는 거죠? 아직 저녁 먹기엔 이른 시간이잖아요. 애시당초 지금 이런 애매한 시간에 뜬금없이 전화하는 것도 다 심심해서 그런 거 아닌가요?"
"헤에, 어떻게 알았지! 그럼 한 시간 뒤에 분수대 앞에서 보자!"
"아직 가겠다고 안 했습니다."
"올 거면서."
정답. 부끄럽지만 저녁을 먹자는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핸드폰을 어깨로 받쳐들고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가끔 이렇게 허를 찌른다. 이 사람한테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엊그제 도서관에서 잠깐 펼쳐봤던 북유럽 판타지 소설에 행동이 통통 튀는 꼬마 님프가 나왔었다. 내용 자체는 단순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 님프의 행동묘사만큼은 이상하게 눈에 밟혔었다. 생기 넘치는 노란색 머리칼, 활발하고 잘 웃는 성격으로 주변사람들을 휘두르는 게 특기인 주인공 무리의 마스코트 격인 캐릭터. 이미 이 묘사 부분에서 은근히 투영하고 있었던 걸까. 언제나 내 혼을 쏙 빼놓고 어디론가 데려가고선 그 거부할 수 없는 말투와 미소로 날 풀어지게 만든다. 과정이 순탄했다고 볼 순 없다. 다만, 그 미소들을 외면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 이따 봐요, 나기사군. 아직 쌀쌀하니까 옷 잘 챙겨 입고 봐야 해요."
"응! 이따 봐!"
새로 생긴 카페의 딸기 파르페가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양 많고, 보기 좋은 맛있는 파르페. 특히 딸기와 초코 시럽이 후하게 얹어져 나오길 바라며 남은 사탕을 주머니에 넣고는 방문을 나섰다.
***
어쩌다 보니 물이 올라서 짧게 적어봤습니다(창피해주금
첫 연성에 뭣도 모르고 무작정 써본 거라 퀄리티는 썩 좋지 않지만 모쪼록 재밌게 봐주시면 바랍니다
끝으로 레이나기 행쇼...☆
'Free! 시리즈 > 연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츠나오나츠] 아침이 되면 (0) | 2018.09.04 |
---|---|
[아사키스] Kiss Of Justice (0) | 2018.08.10 |
[나츠나오] 세리자와 씨의 휴일 (0) | 2018.08.08 |
[나츠나오] 열 (0) | 2016.12.18 |
[마코하루] 어느 새벽 (2) | 2016.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