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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키스] 뜻밖의 로맨스

손도라/핸디 2019. 3. 4. 00:11




[아사키스] 뜻밖의 로맨스

W. 손도라





달이 얼굴을 내민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집에서 혼자 서정적인 발라드만 연속으로 듣다보니 어느새 감성적으로 변하고 말았다. 괜히 흐릿한 달이 안쓰러워 보이고, 서로 얼굴을 부비는 참새들이 부러워졌다. 문득 스스로를 돌아보니 그 모습이 무진장 낯간지럽고 궁상맞아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뜨겁게 달아오를 준비로 바빠야 할 금요일 오후, 나는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다 해서 2180엔입니다.”

잠깐, 잠깐만, 이것도 추가해주세요.”

 

색색의 캔맥주와 간단한 안주거리를 달랑달랑 사들고 집에 돌아왔다. 누가 금요일 밤이 뜨겁다고 했나. 가끔은 이렇게 자기 자신과 친해지는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스스로를 달랬다. 그러지 않으면 괜스레 뜬금없는 얼굴이 떠올랐기에, 애써 그 생각을 떨쳐내려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역시 연락을 해볼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봉투에 담긴 것들을 하나씩 꺼내보니 묘하게 양이 많아보였다. 리모콘을 이리저리 눌러 볼만 한 TV 프로를 물색했다. 황금 같은 금요일 밤에 이렇게 볼 게 없다니. 방송국들이 감을 많이 잃은 게 틀림없다. 이 정도면 다시 나가서 DVD를 빌려오는 게 나을 정도다. 리모콘 조작을 멈추고 볼만 한 작품을 찾아보았다. 리스트를 짜고 가장 끌리는 걸 고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다시 밖으로 나가는 일이었다. 소파에 늘어져 천장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이런 건 천하의 아사히와 어울리지 않는 텐션이다. 그렇게 마음먹고 두 다리를 힘껏 들어올려 반동으로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띵동-

 

이 시간에 누가 연락도 없이 찾아올까. 그럴 사람이 딱 한 사람 떠올랐다. 순수하게 내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현관문을 여니 머릿속에서 익숙했던 얼굴이 나타났다. 분홍빛 머리칼에 서글서글한 표정. 키스미는 근처 편의점 봉투를 들어보였다.

 

아사히 혼자 있을 것 같아서 같이 영화나 보자고-.”

누가 혼자 있어. 나 원래 엄청 바쁘거든.”

그런데 왜 오늘은 혼자야?”

, 가끔은 그런 날도 있는 거지!”

 

키스미는 이런 뉘앙스의 대화가 익숙하다는 듯 샐샐 웃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 혼자 맥주 마시고 있었던 거야?”

“···, .”

 

순간 그 모습이 추레하게 보이진 않을지 걱정하고 말았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자기 집에서 혼자 캔맥주 마시는 건 누구나 하는 일이잖아? 걱정할 필요 전혀 없어, 아사히. 이렇게 생각을 가다듬는 사이 키스미는 자연스럽게 코트를 벗고 소파에 기댔다.

 

거기 서서 뭐 해. 어서 와서 앉아.”

누가 보면 내가 손님인 줄 알겠다.”

 

집주인의 권한으로 키스미가 사온 봉투를 뒤적거렸다. 키스미는 조금 전 나와 똑같이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다 싫증났다는 표정으로 리모콘을 내려놓았다. 봉투 안에는 캔맥주 3개와 그에 어울리는지 의심이 가는 달다구리들, 그리고 내가 보고 싶었던 DVD가 같이 들어있었다.

 

빌려오길 잘했지? 어떻게 재밌는 프로가 하나도 없을까-.”

, 텔레파시···.”

, ?”

나 이거 보고 싶던 참이었거든.”

오오, 서로 통했네!”

 

통했네.’ 이 한 마디에 기분이 더 좋았다는 건 모르게 해야 한다. 내 얼굴이 지금 붉어지는 거랑 네가 웃으며 볼이 살짝 발개지는 건 다른 의미에서일 테니까.

우리는 시덥잖은 만담을 내보내는 TV는 끄고 곧바로 DVD를 재생시켰다. 이 밤중에 너와 단 둘이 있으며 영화에 집중할 수 있을까. 나와는 달리 키스미는 이미 영화 시작 전에 제작사와 협력 업체 로고들이 뜨는 순간부터 영화에 몰입할 준비를 끝낸 것 같았다. 집중한 옆모습을 남몰래 훔쳐보며 혹시라도 들키면 어쩌나 조마조마해졌다. 그런 긴장감도 잠시뿐,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에 집중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젊은이 한 쌍이 좁은 공간이 단 둘만 남겨졌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갑자기 그건 무슨 농담이에요?”

생각해봐요. 당신, 나 좋아하잖아.”

 

뭐냐, 이거.”

하하, 뜻밖의 로맨스네

 

영화의 장르는 분명 액션, 스릴러였다. 난데없이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이 속출하더니 이제는 로맨스의 서막이 올랐다. 이래서 평점이 낮았던가. 정말 댓글대로 포스터만 잘 찍은 영화인 것 같다. 더군다나 대사가 가슴에 콕콕 박혀서 괜히 반감도 들었다. 저게 뭐라고 마음이 따가워지는지.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영화의 전개는 부지런히 돌아갔다. 로맨스 기류도 점점 무르익어 노골적인 스킨십까지 이어졌다. 어딘가 열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취기가 오르나 보다. 인간 본능인지 이런 이상한 기류에도 몰입이 되는 것 역시 취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이놈의 영화는 대체 누가 대사를 짠 건지, 대사 하나하나가 사람 말리게까지 하는 걸까.

 

맞아, 널 좋아해. 이제 됐어?”

?”

“···?”

 

맙소사, 내가 방금 무슨 짓을 한 걸까. 대사에 몰입하다 못해 아예 육성으로 내뱉기까지 하다니. 술이 웬수다. 아니, 지금까지 이런 적은 없었는데. 맞나? 없었나? 안 돼, 침착하자, 아사히. 술김에 그랬다고 하면 돼.

 

, 맞아.”

 

뭐가 맞아! 시이나 아사히, 너 미쳤냐?

 

나 너 좋아해.”

 

키스미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날 바라봤다. 이젠 끝났다. 여기서 어떻게 무마시켜야 할지 모르겠다. 말을 한 건 난데 더 당황스러워서 입을 뻐끔거리기까지 했으니 말 다한 셈 아닌가. 짝사랑이 이리도 어이없게 끝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이젠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듣고 싶지도 않았다. 너는 분명 장난이지? 아사히 취했어? 라고 말하며 특유의 웃음소리를 터트리겠지.

 

, 나도!”

 

방금 내가 잘못 들은 걸까.

 

“···뭐가.”

너 좋아한다고.”

 

취해서 꿈을 꾸는 걸까.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렇게 머리가 터지도록 생각하는 참이었다.

 

이제, 어떡할까?”

 

나도 모르겠다.

 

"사귀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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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모루님께서 주신 키워드 '금요일 밤'으로 써본 단문입니다

아사키스만 은근 술을 많이 멕이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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