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죽어(Kimi ga Shine)/연성 11

[케이사라] 그의 선택은

[케이사라] 그의 선택은 W. 핸디 "다시 말해서 이건···." "전문용어로 '야바위'라는 거지" 휴식시간이었다. 긴과 티격태격하던 아리스 씨는 나름대로 긴을 놀아준다며 게임을 제안했다. 그는 게임을 설명하기 전, 자신이 감옥에 있을 때 이것으로 교도소를 주름잡았다며 자신만만하게 주목시켰다. "뭐 대단한 게임인가 했더니 단순한 운빨 게임이구먼" "저 멍청한, 애한테 참 좋은 거 가르친다!" 거창했던 미사여구로 뒤덮였던 게임은 다름 아닌 손 안에 있는 병뚜껑 찾기였다. 미사여구에 잠시 흥미를 보였던 큐타로 씨와 레코 씨는 아리스 씨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한마디씩 던졌다. "야바위가 생각만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아리스 씨는 이렇게 항변했지만 싸늘하게 식어가는 긴의 눈빛과 레코 씨의 반격에 금방 시..

[큐마이] 'Kore' is done

[큐마이] 'Kore' is done W. 핸디 "이리 줘, 먹으면 안 돼." 마이는 순간 벙찐 표정으로 큐타로를 올려다보았다. 마이의 손에 들려있던 석류 6알은 다시 그의 손아귀로 돌아갔다. 작지만 알알이 탐스러웠던 석류알들이 커다란 손 안에서 우악스럽게 짓이겨졌다. 굵은 뼈대를 타고 흐르던 빨간 과실즙은 채 한 뼘을 못 흐르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먼저 권한 걸 받은 지 1분도 지나지 않았다. 허기를 달랠 수 있다는 설렘을 잃은 건 자신인데 왜인지 설렘을 앗아간 당사자가 슬프고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이는 생각했다. 어영부영 초대 받아 이끌려 온 곳이 지하세계였던 건 당황스러웠지만 이곳은 마이의 기준에서는 생각보다 흥미로운 곳이었다. 험상궂고 괴팍한 거한이 다스리는 무자비한 공간. 지상에서 돌던..

[큐마이] 자학

[큐마이] 자학 W. 핸디 큐타로는 구석에서 스스로 뺨을 내리쳤다. 얼얼해진 볼짝에 도리어 멍해진 그가 고개를 돌렸다. 시선 끝에는 그의 재킷을 이부자리 삼아 곤히 잠든 마이가 있었다. 살얼음판보다 더 서늘하기 그지없는 이곳에서 걱정 말고 잠깐 눈 좀 붙이라고 권했던 건 큐타로였다. "재킷? 덮고 자라고?" "바닥은 딱딱하잖여. 내 체온도 있으니 쪼매 덜 춥기도 할 테고." 그렇게 입고 있던 재킷까지 벗어주며 자기 혼자만 쉰다고 걱정하는 사람을 안심시키기까지 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깨워주겠다고 했는데 오히려 위험한 건 이쪽이었을까. 버거버그 큐타로는 이 데스게임장에서 몇 번인가 본인에게 실망하고 개심하기를 반복했다. 우습게도 지금 이 순간을 그 과정에 추가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용히 구석으로 몸을 ..

[케이사라] 안부편지

※ 사망 소재 주의 [케이사라] 안부편지 W. 핸디 "밖이 많이 춥죠? 와줘서 고마워요." 온기가 일렁이는 찻잔이 앞에 놓였다. 찻잔을 내미는 하얀 손이 괜스레 눈에 걸렸다. 왼손 약지에 꼭 들어간 가느다란 반지가 몹시도 잘 어울렸다. 특징이라고는 방금 전까지 바깥에 있었다는 것을 티내는 붉그스름한 마디들이 전부인 내 손과 비교되었다. 애써 웃음을 지어본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너무 오랜만에 왔네요." 조심스레 찻잔을 손으로 감싸니 캐모마일 티의 표면이 약하게 일렁였다. 아직은 마시고 싶지 않았다. 여자는 언제나 예의상이라도 차를 들라는 권유를 하지 않았다. 대신 가장 단아한 목소리로 질문을 건넨다. 부담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상냥함에 이제는 누가 다듬어주지 않아도 천천히 생각을 고른 뒤 입을 열 수 ..

[큐마이] 몸의 대화

[큐마이] 몸의 대화 W. 핸디 마이는 덜 뜬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어스름한 천장이 정신을 더 멍하게 만들었다. 몸을 움직이자 이불과 살이 맞닿는 바스락 소리가 정적을 물렸다. 습관적으로 돌아누우니 뻐근한 허리와 뭉근한 아랫배가 걸리적거렸다. 마이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감각이다. 돌아누운 방향에는 단잠에 빠진 큐타로가 누워있었다. 한눈에 봐도 거구인 이 남성은 오른손을 제 배 위에 얹어두고 왼팔은 내내 마이의 목 뒤를 지나 길게 뻗어두었다. 마이는 그가 깨지 않을 정도로 움직여 곁을 파고들었다. 습관적으로 그를 안으려던 마이는 잠시 고민했다. 곧 그의 입매가 음흉한 호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이의 손끝이 큐타로의 머리칼로 향했다. 살살 어루만지니 손끝에서 기분 좋은 감촉이 전해졌다. 억센 빗자루 같..

[케이사라] 오늘의 수수께끼

[케이사라] 오늘의 수수께끼 W. 핸디 시간을 확인하지 않아도 확연히 늦은 시각, 소파에 기댄 건지 서로에게 기댄 건지 모호하게 붙어있던 두 사람의 간격이 아주 조금 좁혀졌다. 좁혀진 의미는 딱히 없었다. 케이지와 사라는 무난하게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특별할 것 없는 저녁 식사를 함께 해왔다. 딱 지금처럼 일찍 잠들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할 일이 없다면 별다른 합의가 없어도 텔레비전 앞에 나란히 앉아 시간을 죽이기도 한다. 누구나 공감할 평범함의 극치였다. 애매한 심야의 텔레비전은 그들의 관심을 끌 만한 프로그램을 보여주지 않았다. 채널은 돌고 돌아 희미한 기억 속에나 남아있는 한 케이블 채널에서 잠시 멈췄다. 익숙하지 않은 타국의 언어가 흘러나오고 그에 맞는 일본어 자막이 표기됐다. 이내 화..

[케이사라] Brakeless

[케이사라] Brakeless W. 핸디 시노기 케이지는 희뿌연 창밖을 응시하며 커피잔 손잡이를 매만졌다. 그의 시선은 누군지도 모를 불특정다수의 행인들을 향해있지만, 머릿속에 입력되는 장면은 전혀 달랐다. 핸드백 틈 사이로 보였던 푸른 상자는 소유자의 분위기에 비해 몹시 이질적이었다. 빌어먹을 형사의 눈인지 감인지가 이 한순간만으로 답을 도출시키고 말았다. 답을 정해두고 움직이는 짓은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임을 잘 알고 있어도 이미 나온 결과는 쉽게 파기되지 않았다. 그의 모든 데이터베이스가 하나만을 가리켰다.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졌다면 늘 그랬던 것처럼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을까. “...미안, 사라.” “네?” 하지만 시간은 보통 아군이 아닌 경우가 많다. 적군이거나 중립이거나. 시간이 끄는 대로..

[큐마이] 흔해빠진 산책

[큐마이] 흔해빠진 산책 W. 손도라 큐타로는 불 꺼진 점포 유리창을 거울 삼아 자신의 행색을 이리저리 살폈다. 무난한 무지 티셔츠에 적당히 어울리는 군청색 면바지, 그리고 집을 나서기 전 두어 번 접어 올린 바지 밑단까지 크게 모난 모습은 없었다. 머리를 매만지던 그는 문득 스스로가 우스워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하는 짓인지. 그렇게 혼잣말까지 뱉은 큐타로는 겨우 돌려둔 제정신과 함께 멈춰있던 걸음을 옮겼다. 자주 보던 공원의 입구가 보였다. 평소 러닝하러 자주 오던 곳이 왜인지 낯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복장보다는 보다 움직이기 편한 운동복 차림이었으니 말이다. 전날 밤 떨어둔 너스레와 다른 제 모습에 이제는 한심해질 지경이었다. 그냥 산책하러 나온 거여, 산책. 큐타로는 다시 평정심을 되..

[케이사라] For you

[케이사라] For you W. 손도라 창문을 뚫고 내리쬐는 햇볕이 침대 위에 만개했다. 햇빛을 피해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케이지가 습관처럼 팔을 휘저으며 제 곁을 확인했다. 익숙하지 않은 허전함에 오히려 잠이 달아났다. 그는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쓸며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파란 하늘을 등지고 참새가 날아다니는 창밖이 새삼 낯설었다. 직업 특성상 파란 하늘보단 까만 하늘이, 참새보단 까마귀가 익숙한 생활을 지냈기에 당연할 수밖에 없는 감상이었다. 샤워와 면도로 남은 잠을 전부 털어내고 나오니 그제야 조용한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인가 싶어 벽에 걸린 시계를 한 번 보고는 간단한 상황 판단을 마쳤다. 케이지는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옷장 앞에 서서 지난밤의 감각을 되살렸다. 그는 확신이 드는 위치에서..

[큐마이] 방해자

[큐마이] 방해자 W. 손도라 빽빽이 나열돼있는 책등들을 손끝으로 무심히 쓸어본다. 직물로 엮인 양장본 특유의 촉감만이 남았다. 소름 끼치는 기시감이다. 으레 이런 규모의 서고라면 먼지가 쌓이기 어려운 책등을 만져도 책이 뿜는 분진이 조금이라도 느껴지기 마련인 것을. 이런 구석에서조차 인간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것 또한 심히 모욕으로 다가왔다. 이곳에서 제대로 살아 숨쉬는 존재는 과연 몇 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최초의 시련에서 살아남은 자들, 그 중에서도 메인게임에서 희생되지 않은 자들. 그들은 당연히 이곳에서 가장 완벽한 산 자로 분류된다. 그렇지만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인간의 도리를 버리면서까지 생존만을 절박하게 좇는 경우라면 어떨까. 가령, '더미즈'는 과연 그들과 똑같이 완벽한 산 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