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캐릭체인지(Shugo Chara!)/연성

[나기리마] 성 안의 후지사키군

손도라/핸디 2024. 1. 17. 22:48

 


※ 모브녀가 등장합니다
 






 
[나기리마] 성 안의 후지사키군
W. 핸디
 
 




 
 
연기의 기본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
 
“아쉽네요. 당신이 진짜 여자였다면 더 아름다웠을 텐데.”

누구든 하나씩은 떠올릴 수 있는 어두운 구석이다. 생각 없이 던진 말 한마디에 크게 동요했거나 그로 인해 오랫동안 앓았던 경험. 부정적인 시간을 만들었던 그 경험 또한 최고의 연기를 위해서는 양분으로 삼아야 한다. 당연하게도 지난날에는 이런 심오한 생각을 할 만한 능력도, 자격도 없었다. 그때의 나는 중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아이였다. 기껏해야 또래보다 조금 성숙한 성격의 아이일지라도 어른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을’의 위치를 지켜야 한다. 아주 오래된 국가 단위의 규칙이다.
 
“조금 안 됐네요. 그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성숙해요. 어릴 때부터 부담이 컸겠죠.”
“그래도 장자는 어른스러워야 해. 그 정도 부담은 당연한 거야. 장차 가주가 될 몸이니까.”
“아버지 되는 분이 어디 보통 분인가요. 어머니도 정통한 명문가에서 온 교육자잖아요.”
 
매년 심심찮게 뒤에서 아무 말이나 내뱉는 친지들의 말을 못 들은 척 넘겨왔다. 한때는 가만히 참고만 있을 수는 없다며 약간의 반격을 꾀한 적도 있지만, 얌전하면서도 고고한 것이 여성 무용을 위한 가장 기초 중의 기초이지 않은가. 조금 더 신중하게 구는 것이 오히려 좋은 방법일 수도 있을 테니까. 마음대로 하는 일탈은 집안 행사를 뒤로하고 담장을 넘어 숨을 돌리고 오는 수준이 적당하다.
 
가문을 이을 후계자는 어릴 때부터 전통을 따라 빈틈없는 교육관 아래 주어진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카제아나기류 후지사키파의 장자인 나기히코는 이제 어린아이라며 동정받는 신분을 넘어섰다. 요컨대, 지금의 그는 보호자를 따라온 어린 후계자가 아닌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어엿한 차기 가주가 된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이 세계의 기준으로 아직 한창인 나이와 최고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뛰어난 온나가타 배우였다. 아버지에게 집안을 넘겨받으려면 나기히코가 살아온 시간의 곱절은 더 보내야 할 테지만, 그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아직은 앳된 티가 나지만, 어릴 때부터 수련해온 단정한 몸가짐과 부드럽고 강단 있는 눈빛은 장성한 청년으로 봐도 무리가 없었다. 이는 곧 대외적인 사교 활동에 얼굴을 비추며 직접 인사를 드리고 받을 나이가 되었다는 뜻이다. 나기히코는 북적거리는 행사장에서 충분히 맡은 바를 수행하고는 잠시 무리에서 벗어났다. 손수건으로 손에 묻은 물기를 정리하던 참에 곱게 단장한 한 여인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나기히코는 빠르게 여인을 살펴보고는 여인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S&H사의 쿠리하라 마리에 씨죠? 반갑습니다. 좀 전에 부친께 인사드릴 때는 못 뵀네요.”
 
나기히코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깔며 눈웃음을 지었다.
여인은 나기히코와 비슷한 앳됨을 갖고 있었다. 아직은 소녀라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액면가였다. 마리에는 단정한 손짓으로 가슴께를 살짝 가리며 화답했다.
 
“제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였나 봐요. 무대 전에 이런 우연으로 만날 수 있게 돼서 기뻐요. 곧 진행될 당신의 무대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마리에는 기억해줘서 고맙다며 놀란 기색을 보이거나 어떻게 알았냐는 말 대신 더 앞선 단계의 인사말을 건넸다. 일반적이지 않게 다소 저돌적이고 대담한 태도였다. 마리에는 나기히코의 손에 들린 손수건을 잠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낭만적인 색감의 손수건이네요. 역시 온나가타 가문의 자제답게 무대 장식에 자주 쓰이는 벚꽃색을 즐기시는 건가요?”
 
나기히코는 잠시 멈칫했으나 이내 손수건을 단정히 개어 주머니 속 깊은 곳까지 넣었다.
 
“선물 받은 손수건이라서요. 제가 고른 색은 아니지만 마음에 들어서 자주 사용하고 있어요.”
 
마리에의 눈매가 휘었다. 평범한 웃상의 눈웃음에서 조금 날카로운 느낌을 자아냈다. 나기히코는 그 눈웃음의 의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적당히 하고 좀 비켜주면 좋겠는데’ 같은 속내뿐이었다. 그는 계속된 체면치레와 긴 연기에 이어 약간 피곤한 기색이 돌지 않도록 신경 써야 했기에 충분히 바빴다. 보아하니 아직은 비켜줄 생각이 없는 눈치였다. 마리에는 계속해서 대화의 꼬리를 이었다. 더불어 어떤 시발점이 되는 문장을 소리를 죽이고 속삭이는 말투로 말했다.
 
“선물 고르는 센스가, 조금···.”
 
나기히코의 신경이 조금 곤두섰다. 분명 제 기준에 맞지 않는 가격대의 제품인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 * *
 
“별 거 아니야. 너 가져.”
“분홍색? 예쁘다. 나 주는 거야?”
 
리마는 대답 대신 시선을 창밖으로 옮겼다. 나기히코는 조심스레 손수건을 펼치며 매만졌다. 부끄러움에 대답을 하지 않는 리마의 옆모습은 그에게 너무도 익숙했고 그가 좋아하는 모습 중 하나였다. 나기히코의 입꼬리는 쉬이 내려오지 않았다. 그는 손수건을 원래 포장되어있던 상태로 접어넣으며 말했다.
 
“벚꽃?”
 
그러자 리마는 빠르게 간결하게 말했다.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리마는 이제 나기히코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라는 의문만 띄우던 나기히코의 시야에 소박하게 꾸며진 복숭아 케이크가 눈에 들어왔다. 나기히코의 표정에 장난끼가 묻어나기 시작했다.
 
“그럼 무슨 의미일까. 어렵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 알려주면 안 돼?”
 
다 알면서 모르는 척 하지 말라는 말을 꾹 참고 있는 표정이 무척 귀여워서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나기히코는 속으로 몰래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웃으면 안 된다, 후지사키 나기히코.
 
“···복숭아꽃이야.”
 
나기히코는 자연스레 입가를 잠시 가리고는 서서히 쓸어내렸다. 또박또박 자신이 전하고 싶은 의미를 스스로 고백하는 모습은 여전히 견디기 어려웠다. 이제 이 뒤는 나기히코가 정답을 대신 읊어줄 차례다.
 
“내가 리마쨩을 닮았다고 한 그 꽃이네.”
“······.”
“그땐 그 말 싫어했으면서.”
“······.”
“설마···, 항상 갖고 다니면서 날 생각해달라는 뜻?”
 
리마의 눈이 조금 커지며 볼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헛소리 할 거면 다시 줘!”
 
리마는 재빨리 손을 뻗었지만, 체구에 걸맞는 아담한 팔로는 나기히코를 이기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그저 분한 얼굴로 그를 노려보는 게 전부였다.
 
“줬다 뺏는 게 어딨어. 이제 내 거야.”
“···유치해.”
“항상 소중히 갖고 다닐게. 리마쨩이 준 거니까.”
“···그러든지.”
 
* * *
 
마리에는 그치지 않고 약간 기세등등해진 손짓을 취했다.
 
“저라면 패랭이꽃을 닮은 자수 손수건을 선택했을 거예요. 그쪽이 더 후지사키 씨에게 잘 어울리니까요.”
 
나기히코의 눈빛이 한없이 매말랐다. 이 총체적인 무례함이 도리어 그의 안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던 열을 단숨에 잠재웠다.
 
“역시 패션업계에서 최고의 인지도를 가진 기업의 따님다운 센스네요. 안타깝게도 제 취향과는 대단히 멀지만, 쿠리하라 씨에게 손수건을 선물 받게 될 분은 기뻐하실 거예요.”
 
나기히코는 마리에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 궁금하지도 않았다. 다시 말꼬리를 잡히기 전에 물 흐르듯 작별의 목례를 덧붙였다, 저 고아하고 무례한 부잣집 아가씨는 하찮은 자존심을 부리며 자신을 먼저 떠난 남자를 절대 붙잡지 않을 것이다. 나기히코는 넓은 보폭을 유지하며 창밖의 하늘을 유심히 살폈다. 한밤이 된 하늘이 그를 재촉했다. 후지사키 나기히코가 영원히 머물기로 맹세한 성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각이 머지 않았다. 지금의 나기히코에게는 성에 차지 않았다. 더 빨리 돌아갈 수 있는 연기 시나리오를 계획하며, 그의 연락을 못내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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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 때문에 도통 시간이 안 나서 나기리마 연성하고 싶다고 고성방가 지를 뻔 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감이 걸린 연성도 아닌 글을 3,600자나 썼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리에 저 싹바가지 없는 것...
네죽 연성도 현생 사는 중간에 핸드폰으로 휘갈기는 게 한계였는데 현생에 잠깐 공백이 생겨서 나기리마를 쓰자고 마음 먹기만 했던 게 이렇게 됐다...☆
리마의 성인 '마시로(真城)'는 리마가 처음 등장했을 땐 가정이라는 성 안에 갇혔다는 걸 의미하여 지은 이름 같다고 팬들이 추측하고 있는데여
이걸 좀 써먹었습니다 나기히코만의 안락한 성~ 리마쨩~
씨피연성에 모브를 등장시킨 것도 처음임 그사세력을 좋아하는데 어쩐지 로열 베이비로서의 나기히코가 보고 싶어졌어
이제 이거 올리면 다음엔 또 언제 오타쿠 연성 하냐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