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마이] 자학
W. 핸디
큐타로는 구석에서 스스로 뺨을 내리쳤다. 얼얼해진 볼짝에 도리어 멍해진 그가 고개를 돌렸다. 시선 끝에는 그의 재킷을 이부자리 삼아 곤히 잠든 마이가 있었다. 살얼음판보다 더 서늘하기 그지없는 이곳에서 걱정 말고 잠깐 눈 좀 붙이라고 권했던 건 큐타로였다.
"재킷? 덮고 자라고?"
"바닥은 딱딱하잖여. 내 체온도 있으니 쪼매 덜 춥기도 할 테고."
그렇게 입고 있던 재킷까지 벗어주며 자기 혼자만 쉰다고 걱정하는 사람을 안심시키기까지 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깨워주겠다고 했는데 오히려 위험한 건 이쪽이었을까.
버거버그 큐타로는 이 데스게임장에서 몇 번인가 본인에게 실망하고 개심하기를 반복했다. 우습게도 지금 이 순간을 그 과정에 추가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용히 구석으로 몸을 돌렸다. 자부하건대 큐타로는 지금껏 이런 쪽의 분란이라고는 한 점도 없이 살아온 사람이었다. 보온과 편의성에 멋까지 챙겨 자주 입어온 자신의 재킷이 이상하리만치 달라보였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그저 입고 있는 아니, 휘감고 있는 사람이 달라졌다는 이유 밖에 없었다.
평온한 표정으로 잠든 마이는 거의 온몸이 재킷에 덮여있었다. 소매가 없는 디자인이 절묘해져 언뜻 보면 모난 곳 없는 누빔이불 같아보였다. 부숭부숭 부풀어올라있는 털카라는 어떻게 그리 딱 맞는 위치에 들어맞아서는 베개 삼아 머리를 얹었는지. 이유 모를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까지는 괜찮았으나 문제는 그 이상이었다. 큐타로는 단 둘 밖에 없는 잠잠한 공간에서 제 옷에 파묻인 외간여자를 보니 왜인지 기분이 이상해졌다. 결단코 쓰레기 같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 광경 자체가 무언가 낯설고 이상했을 뿐이다. 이 생경한 느낌에 지레 겁 먹고 자신을 체벌했다. 큐타로는 이렇게 겁먹은 자신을 겁쟁이라는 식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아마 어느 때였든 몇 번이고 그런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조했다. 저항할 수 없는 데스게임 시스템으로 잠깐 붙어다니는 사이에 이렇게 맥을 못 추는 자신이 한심했다.
큐타로가 제 뺨을 후려치자 소리에 반응한 마이가 옅은 신음을 내며 뒤척였다. 큐타로는 일순간 숨이 멎었다. 다시 안정적으로 잠에 빠진 마이를 확인하고서야 소리를 죽이고 숨을 몰아쉬었다. 무슨 꿈을 꾸는지 입매가 더 둥글게 말려올라갔다. 이를 보던 자신의 입가도 둥글어진 것을 자각하고서는 또 한 번 머릿속에서 정신 각성을 되새겼다. 야구공을 대할 때나 외던 주문을 이런 요상한 상황에서 되뇌일 줄이야. 큐타로는 이내 고민에 빠졌다. 극한의 상황에서 오는 정신적인 문제일까. 이게 바로 그 몇몇 동기들이 곧잘 농담 삼아 대화 소재로 삼던 지저분한 정염일까. 앞에서 당당히 지적하진 못했어도 그때만큼은 동고동락한 동기들의 모습이 옳지 않다고 판단해왔는데, 그런 불순한 짓을 자신이 똑같이 하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 자괴감을 느꼈다.
여전히 잠에 빠진 마이가 재킷을 조금 끌어올려 덮었다. 큐타로는 몸을 돌려 닫힌 출구쪽을 등졌다.
"악마가 따로 없구먼···."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가. 지금은 무심코 내뱉은 혼잣말의 의미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잠들기 전 드문드문 지친 기색을 보이던 마이를 떠올렸다. 딱 10분 뒤에 깨워달라는 마이의 신신당부는 이미 무시된 지 오래였다. 혹시 모를 위험을 경계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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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메이커가 '꿈을 꾸었다', '정염', '악마'라는 키워드를 던져줘서 그대로 썼는데
이런 개찌질한 내용이 돼서 큐타로에게 조금 미안함
그치만 충분히 가능성??? 같은 거??? 있다고 생각해서 킵고잉 갈김 깔깔 못난 야구바보쑥맥아
시간상 큐타로는 아직 마음 없을걸요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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