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죽어(Kimi ga Shine)/연성

[케이사라] 안부편지

손도라/핸디 2023. 12. 23. 09:16


※ 사망 소재 주의





[케이사라] 안부편지

W. 핸디







"밖이 많이 춥죠? 와줘서 고마워요."

온기가 일렁이는 찻잔이 앞에 놓였다. 찻잔을 내미는 하얀 손이 괜스레 눈에 걸렸다. 왼손 약지에 꼭 들어간 가느다란 반지가 몹시도 잘 어울렸다. 특징이라고는 방금 전까지 바깥에 있었다는 것을 티내는 붉그스름한 마디들이 전부인 내 손과 비교되었다. 애써 웃음을 지어본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너무 오랜만에 왔네요."

조심스레 찻잔을 손으로 감싸니 캐모마일 티의 표면이 약하게 일렁였다. 아직은 마시고 싶지 않았다. 여자는 언제나 예의상이라도 차를 들라는 권유를 하지 않았다. 대신 가장 단아한 목소리로 질문을 건넨다. 부담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상냥함에 이제는 누가 다듬어주지 않아도 천천히 생각을 고른 뒤 입을 열 수 있다.

"오늘은 푹 자고 나와서 몸이 좀 개운한 것 같아요."

여자는 여전히 온건한 얼굴로 나의 대답을 받아주었다. 무언가 더 이야기 하고 싶은 마음과 혓바닥의 신호가 어긋났다. 붉은 기가 가신 손을 쓸며 말을 고르려다 오늘은 이만 됐다며 다독였다. 분명 스스로 다독이는 말인데도 왜인지 다른 목소리가 덮인 것 같다. 이따금 이렇게 말 상대가 되어주는 상대방은 종종 이것을 걱정했다. 그러나 이런 걱정도 강권하지 않는 태도가 늘 고마웠다. 언젠가 문득 생각이 날 때면 이리 스스럼없이 찾아오는 날이 벌써 5년을 훌쩍 넘겼다. 가볍게 차 한 잔 마시는 느낌으로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말이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려다가 테이블 한 켠에 놓인 펜자루가 시선을 끌었다. 나는 조심스레 여자에게 물었다.

"혹시 종이랑 펜을 빌릴 수 있을까요?"

여자는 흔쾌히 깨끗한 새 종이를 꺼내 단단한 펜과 함께 건넸다. 나는 익숙하게 옆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 * *

'잘 지내시나요? 오랜만에 쓰는 편지네요. 여기는 한겨울이라 날이 무척 추워요. 살얼음이 더 단단하게 얼고 입김이 흔해지는 날씨면 집 밖으로는 더 나가기가 싫어지는데, 오늘은 왠지 외출을 하고 싶었어요. 겨울에 마시는 위스키가 맛있었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이제는 저도 마실 수 있을까요.'

평범하게 '다음에 시간 되면 만나요', '이만 들어가볼게요' 같은 문구로 마무리 지으며 펜촉을 뗐다. 아직 무언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펜촉으로 종이를 톡톡 건드리니 종이에 잔잔한 반점 몇 개가 늘어갔다. 오늘은 어리광을 부려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마지막 문장에 줄을 북북 긋고 계속해서 글을 이었다.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을 전부 시원하게 하려면 조금 더 연습을 해야 하나 봐요. 우리는 아주 잠깐 만났을 뿐인데. 함께 하고 싶은 날들은 왜 그 이상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주변 사람들을 관찰해보고 책도 찾아봤지만 만족스러운 답이 나오질 않아요.'

소담하게 채운 글씨 몇 자가 차츰 어그러졌다. 젖은 시야를 헤치고 끝까지 마지막 문장을 꾹 눌러담았다. 펜촉과 동시에 굳게 다문 입술이 멋대로 움직였다.

'보고싶어요, 케이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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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드엔딩은 취향도 아니고 처음 써보는데 네죽은 장르가 장르인지라...
왠지 며칠 전부터 머릿속을 맴도는 플롯을 빠르게 탈고했다
이거는 2차 창작일 뿐
시노케가 사라 냅두고 가면 내가 망태기 들고 추노할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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