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캐릭체인지(Shugo Chara!)/연성 26

[나기리마] 달밤의 고백

[나기리마] 달밤의 고백 W. 손도라 “있지, 있지! 다들 ‘달’ 하면 뭐가 먼저 떠올라?” 다소 분주해보였던 야야가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야야는 이번 발레공연에서 실로 오랜만에 주조연 배역을 받았다. 주인공의 성장을 도와주는 신비로운 달의 정령. 귀여운 의상과 극에서 상당한 비중을 자랑하는 주조연 배역이라는 타이틀은 야야의 사기를 한껏 올리기에 충분했다. “달이라면 보름달? 초승달도 예쁘고···.” “아니-. 그런 거 말고 분위기나 성격 그런 거 있잖아!” 덩달아 심오해진 아무는 미간을 찌푸리며 달과 연관되는 모든 단어들을 방출했다. “‘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라···. 밝고 아름다운, 하늘에 떠 있는. 아악, 내 창의력이 이렇게 떨어졌나?!” 고민의 파장은 야야에서 아무로, 두 명에서 세 명으로..

[이쿠아무] 가을의 단풍색

[이쿠아무] 가을의 단풍색 은은하게 광이 나는 구두 앞코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살풋 발을 움직이니 부드러운 가을바람이 대답이라도 해주는 듯 옆머리를 쓸고 갔다. 아무는 팔을 쭉 뻗어 크게 기지개를 켰다. 힘찬 기지개 뒤엔 무력감이 뒤를 이었다. 바람결에 간간이 들리는 낙엽소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늘어져있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계절에 몸을 맡기니 좀 전까지 꿀꿀했던 기분이 사르륵 녹아내렸다. 지금 이 순간은 그 누구보다도 히나모리 아무에게 꼭 필요했던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느끼는 감정에 보답이라도 하는지 가을바람은 조용히 대답했다. 치맛자락 위로 날아온 단풍잎 하나는 감성의 정점을 찍게 해주었다. “이제 정말 가을이구나. 가을은 예술의 계절이지.” “그리고 군고구마가 맛..

[나기리마] 꽃을 위한 휴식

[나기리마] 꽃을 위한 휴식 W. 손도라 시선 끝에는 검지가 오도록 하되, 나머지 손가락들은 흐드러지는 꽃처럼 자연스럽게. 자연스럽되, 꽃의 절개와 아름다움은 놓치지 않도록. 나기히코의 턱 끝에는 땀방울 하나가 위태롭게 매달려있었다. 누군가에겐 찜찜하고 냄새 나는 분비물일지라도 그는 그런 땀마저 향기로운 꽃처럼 보이게 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박자를 생각하며 몸으로는 리듬의 본질을 타야 한다. 공연까지 남은 시간은 단 사흘. 나기히코에게 남은 사흘이란 더욱 더 사실적이고 환상적인 꽃이 되기 위한 마지막 시간이었다. 방 안을 가득 메운 음악은 이제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나기히코는 발끝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며 마지막 피날레 동작을 준비했다. 하나, 둘. “거기까지.” 나기히코는 동작..

[나기리마] 너의 눈

[나기리마] 너의 눈 W. 손도라 이따금 땅을 보고 걷는 날이 있다. 자각한 지는 얼마 안 됐다. 스스로 생각해보건대 보통 주변을 보고 싶지 않거나 기운이 없을 때 그러는 것 같다. 종종 발에 채이는 작은 돌을 쫒아 발끝으로 굴리기도 한다. 돌에는 죄가 없지만 사람에게 풀 수 없는 감정을 돌에게 푸는 것이다. 발에 채인 돌은 예상보다 멀리 날아가기도 한다. 돌 하나 차자고 걸음을 떼는 건 에너지 낭비 아닌가. 발끝에 닿지 않는 작은 돌을 괜스레 바라봤다. 아무 관계도 없는 미물을 야속하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심술의 끝이 아닐까. 그렇게 돌을 바라보던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던 돌과 나의 세계에 누군가 들어왔다. 차분한 갈색 구두가 작은 돌 옆에 자리했다. 갈색 구두를 신은 ..

[나기리마] 과자

[나기리마] 과자 W. 손도라 “에에, 과자가 다 떨어졌잖아?” 야야는 빈 과자봉지를 흔들며 아쉬워했다. “거기 있던 과자 중 반은 네가 먹은 거 알아?” 쿠카이는 자기 몫의 과자를 해치우며 덧붙였다. 야야는 굴하지 않고 입을 삐죽거렸다. “나머지 반은 쿠카이가 다 먹었거든!” 진짜 남매라 해도 믿을 두 사람의 투닥거림에 방 안은 웃음꽃이 피었다. 야야의 부름으로 왕년의 가디언 멤버들 중 일부가 야야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이 뜬금없는 상황은 바로 유이키 가의 사정으로부터 시작된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오후, 가디언 멤버들은 다소 급박한 어투의 연락을 받았다. 발신자는 유이키 야야. 그날 아침, 야야의 할머니가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야야의 부모님은 급하게 집을 비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기리마] Bitter and Sweet

[나기리마] Bitter and Sweet W, 손도라 오른쪽은 시끄러운 경적 소리, 왼쪽은 수다 삼매경인 학생 무리. 리마는 목에 두른 머플러를 끌어올렸다. 머플러를 끌어올린대도 소음을 안 듣게 될 순 없지만 최소한 그 난리통과 자신을 구분 지으려는 일종의 선긋기였다. 리마는 머플러에 반 이상 파묻힌 자신의 얼굴을 머릿속에 그렸다. 분명 귀와 볼은 빨갛게 물들어있을 테고, 미간에는 살짝 주름이 져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그런 꼴이다. “바보 같아.” 리마는 자신만 들릴 목소리로 자조했다. 리마는 골목길 모퉁이에 자리한 카페로 들어갔다. 무미건조한 어투로 주문을 한 뒤 일부러 창가와 멀찍이 떨어진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열흘 전부터 고대하던 아무와의 약속 당일이었다. 평범하게 번화가 내 쇼핑몰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