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캐릭체인지(Shugo Chara!)/연성 26

[나기리마] 순간의 고민

[나기리마] 순간의 고민 W. 손도라 우리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섯 명이었다. 아무, 야야, 타다세, 나, 그리고. “어떡하지? 주변이 시끄러워서 전화벨이 안 들리나 봐.” 여기 옆에서 전화 걸고 있는 애. 그렇게 총 다섯 명이었다. 옆 마을에서 매년 진행되는 골목축제가 올해는 더 화려한 불꽃놀이가 준비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야야의 전폭적인 지지로 오랜만에 모인 가디언 맴버들이었는데 인파에 밀려 다른 일행들을 놓치고 말았다.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긴 한데, 하필 제일 어색한 애랑···. “저기, 리마?” “왜.” “그냥 돌아다니면서 찾아보는 게 빠르지 않을까?” 나기히코는 그렇게 말하며 내가 들고 있는 핸드폰 화면을 향해 살짝 눈짓했다. 동감하는 바이지만 그렇다고 쉽게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

[나기리마] 행복을 빌어줄게요

[나기리마] 행복을 빌어줄게요 W. 손도라 첫 짝사랑이었다. 누가 봐도 반할 천사 같은 얼굴에 작고 가녀린 몸집. 소위 남자들이 여자친구로 선호하는 외모라서 처음엔 그 아이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어느 순간 그 아이의 본 모습이 드러난 뒤로 대부분 사라졌지만 나는 그 아이의 본 모습에 더 눈길이 갔다. 상냥하고, 성실하며, 새침한 겉모습과는 달리 배려심이 깊었다. 개그를 좋아한다는 게 좀 깬다는 사람이 있지만 그 아이는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것뿐이다. 우유부단하지 않고, 똑부러지는 그 아이는 특히 친구들에게 건네는 온화한 미소가 정말 귀여웠다.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머뭇거리며 바보 같은 계획을 던져버리고 무릎을 꿇은 채로 고백을 했다. 그 아이는 나..

[나기리마] 그들의 밤하늘

[나기리마] 그들의 밤하늘 W. 손도라 리마의 볼이 잔뜩 부풀었다. 그러나 짜증 가득한 얼굴과는 달리 그의 작고 하얀 손은 제 몸을 가리는 박스를 야무지게 받치고 있었다. 나기히코는 그저 살며시 눈치를 볼 뿐이었다. 세이요 학원의 이사장은 매우 독특한 사람이다. 이상한 시점에 튀어나오질 않나, 학교 지하에 미로를 설치하지 않나. 가디언에게는 아주 좋은 어른 중 한 명이지만 그의 독특함을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독특한 이사장께서 그들에게 건넨 부탁이 시발점이었다. 이사장은 갑자기 로열가든으로 찾아와 사람을 찾더니 플라네타리움까지 짐 옮기는 데에 도움을 구했다. 리마는 이사장이 야속했다. 하필 그런 부탁을, 로열가든에 사람이 없을 때 하다니. 아니, 아주 잠깐 나기히코와 단 둘이 있는 그..

[이쿠아무] 봄비

[이쿠아무] 봄비 W. 손도라 손을 내미니 둥그스름한 물기가 하나, 둘 맺혔다. 물방울이 늘어날수록 밀려나는 빗물들에 손가락을 살짝 굽히니 손끝으로 스르륵 내려앉는 모양새가 퍽 즐거웠다. 번거롭지 않고 무난한 날씨는 햇볕이 적당히 내리는 맑은 날씨지만, 가끔씩 산책 중에 하늘빛이 바뀔 때면 손바닥을 가만히 펼쳐보는 버릇이 생겼다. 손 크기가 지금의 반절 밖에 안 되던 시절부터 즐기던 일종의 작은 놀이였다. 흐름이 이끄는 대로 맺히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빗방울들을 보고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옥죄던 무언가가 잊혀졌다. 잠시 동안의 작별을 건넸을 때, 가슴이 미어지는 한편으로 그 시절의 빗방울이 스며들었다. 이륙한 지 몇 시간이나 지났기에 보이는 것은 제각각의 모양을 가진 구름덩이뿐이었다. 비가 내릴 틈도 없..

[나기리마] 너의 생일

[나기리마] 너의 생일 W. 손도라 딸깍, 딸깍, 딸깍. 꽤나 규칙적으로 들리는 소리가 마치 시계침 같았다. 쿠스쿠스는 딸깍거리는 소리에 맞춰 고개를 움직였다. 다소 경박하게 들릴 법한 소리인데도 즐거워하는 쿠스쿠스는 이를 함께 즐기기 위해 주인을 불렀다. “리마-, 이 소리 재밌다. 그치!” “···” “리마?” 그가 뒤를 돌아보니 그의 주인은 근심 가득한 얼굴로 볼펜을 쉴 새 없이 괴롭히고 있었다. 쿠스쿠스는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리마를 불렀다. “리마-.” “···” “리-마-!” 화들짝 놀란 리마는 그제야 손을 멈추고서 쿠스쿠스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했어? 내가 몇 번이나 불렀는데.” 리마는 잠시 쿠스쿠스에 물음에 무어라 답할지 고민하다 느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어, 미안. 딱..

[나기리마] 어떤 이야기

[나기리마] 어떤 이야기 W. 손도라 세이요 학원 초등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생회, 가디언. 가디언은 K체어, Q체어, J체어, A체어로 구성되어있으며, 올해까지는 예외로 특별직위인 JOKER가 함께 했다. 가디언에는 졸업생 가디언을 위해 멤버들이 졸업식을 직접 지휘하고 꾸며주는 전통이 있다. 그 전통은 올해도 여전히 이어졌고, 유일하게 재학생으로 남는 A체어 유이키 야야는 차기 가디언들과 함께 그들의 졸업식을 기획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아쉬운 이별, 또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작이 되는 날. 벚꽃이 만개할 준비를 할 때 그들은 각자 또 다른 꿈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야야가 잘 진행했을까?” “야야는 이번이 두 번째니까 잘할 거야.” “그리고 이젠 후배들도 있으니까···.” “···그..

[나기리마] 안경

[나기리마] 안경 W. 손도라 안경의 기본적인 기능은 평균보다 낮은 시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교정된 시력을 가져다주는 보조 도구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단순한 물건에도 구실을 잡아 거대한 이미지를 덧씌우기 마련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안경 쓴 사람을 보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나열해보라고 해보자. 그 중 상당수가 ‘지적인’, ‘박식한’, 똑똑한‘ 등의 형용사를 쓸 것이다. 안경이 발명된 지 얼마 안 됐을 적에는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맞아떨어져야 하지만 아무튼 안경이 가져다주는 1차적 이미지는 그리 나쁜 편이 아니다. “어때? 나 좀 똑똑해 보이지 않아?” 때문에 현대에서는 안경을 단순히 건강을 위해 쓰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을 좋게 보이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쓰기도 한다. 야야는 어설프게..

[나기리마] Surprise

[나기리마] Surprise W. 손도라 “저기요. 이거 떨어뜨리셨어요.” “아, 감사합니다.” 리마는 여자에게 감사를 표하고서 재빨리 손에 쥔 물건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바닥에 떨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거슬리는 얼룩이나 먼지 따위의 흔적은 없었다. 어젯밤 손수 만든 책갈피에는 복숭아꽃 한 송이가 코팅되어 있었다. 리본이 생각만큼 만족스럽게 묶이지 않아 몇 번을 풀어헤쳐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리본의 매무새를 다듬었다. “역시 리마는 복숭아꽃 같아.” “저번처럼 ‘작고 동글동글하고 귀여워서’라고 할 거면 그만 둬.” “아니, 그냥. 이 꽃만 보면 리마가 생각나거든.” 그렇게 말한 나기히코는 리마의 머리에 떨어진 복숭아꽃 한 송이 떼어 손에 쥐어주었다. 습관적으로 짓는 그의 미소가 왠지 얄미웠다...

[쿠카우타] 어른의 첫눈

[쿠카우타] 어른의 첫눈 W. 손도라 ‘자고로 겨울의 만찬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눈에 보이는 선명한 온기와 보기만 해도 식욕을 돋우는 윤기, 그리고 소중한 사람과 함께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일전에 본 칼럼의 한 구절이 생각나던 참이었다. 지금 나에겐 100년의 역사가 담긴 라멘 한 그릇과 이따금 심심하지 않게 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으니 서술자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상황이다. 적어도 5분 전까지는 그랬다. “상대적으로는 보기 힘드니까요. 그만큼 기대하게 되지 않나요?” “맞아요! 모든 로맨틱함의 시작, 겨울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죠. 오늘의 주제는 바로바로~ ‘첫눈’입니다!” 십대 여자아이들을 겨냥한 포맷은 언제나 비슷하다. 신비한 점괘, 뷰티 정보, 우정과 사랑. 지금 내 귀를 관통하는..

[나기리마] 만나고 싶은

[나기리마] 만나고 싶은 W. 손도라 한 달 전부터 계획한 데이트였다. 본격적으로 순회공연에 돌입한 나기히코는 한 달에 한 번 만나기도 빠듯하게 바빠졌다. 그 중 중요도가 높은 공연을 앞둔 시기에는 무려 두 달 만에 만난 적도 있었다. 서로 사는 곳이 편도 4시간을 넘어가는 것도 아닌데 처지는 영락없는 롱디커플이었다. 아무튼 오늘은 그 귀하디 귀한 데이트 당일이었다. 예정대로라면 지금은 각광 받는 야외 테마 전시회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을 것이다. 창문을 열고 손을 살짝 뻗으니 삽시간에 흠뻑 젖었다. 짙은 시멘트 벽돌처럼 칙칙한 하늘은 앞으로 두세 시간은 더 퍼붓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 같았다. 장마철이었지만 일기예보를 시시때때로 확인하며 안심했던 날이었다. 야속하게도 오늘은 일기예보를 빗나가는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