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캐릭체인지(Shugo Chara!)/연성

[나기리마] 우산 없는 날

손도라/핸디 2020. 8. 23. 22:32

 

 

 

[나기리마] 우산 없는 날

W. 손도라

 

 

 

 

손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작은 빗방울 하나가 살갗을 간질였다. 땅바닥에 떨어지는 빗줄기들이 세차게 곤두박질치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어젯밤 가방 정리를 했던 자신이 괜히 원망스러웠다. 장마철에 우산을 빼놓다니 정말 바보 같아. 리마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리마는 초점 없는 눈으로 빗줄기들의 향연을 바라보았다.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이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영문 모를 사색에 잠기기 딱 좋다고 생각했다. 다시 교실로 올라갈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아주 멍하게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머리 위에 천장이 있는 건물 현관이지만 세찬 빗줄기는 아랑곳 않고 리마의 옷과 가방에 하나둘 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리마는 그 또한 신경 쓰지 않고 점점 더 멍해졌다. 회색빛 하늘, 귓가를 강타하는 규칙적인 빗소리, 차갑게 튀는 빗방울. 리마는 생각했다. 아마 어떻게든 집에 도착해도 그 무렵엔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조차 못할 것이다.

그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리마는 슬슬 사색에서 탈출했다. 현실과 마주할 시간이 온 것이다. 어떻게 하면 빠르고 무난하게 집으로 갈 수 있을까. 선생님의 일을 돕느라 남들보다 늦게 하굣길에 올랐다. 아마도 주변에 아는 사람은 전부 우산을 쓰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사색의 시간에서 현실로 돌아온들 달라지는 건 없었다. 리마는 하는 수 없이 가방을 머리 위로 올리며 현관 밖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그 순간 발 밑에서 그림자가 지며 빗소리가 차츰 다른 소리로 바뀌었다. 빗소리는 맞는데, 마치 어딘가에 부딪히는 빗소리였다.

 

"나기히코?"

 

리마는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기히코는 그런 그를 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맞고 가려고? 그럼 감기 걸려. 이거 쓰고 가."

 

리마는 갑작스레 찾아온 호의에 당황했지만 이내 차분하게 생각했다. 그리고는 나기히코의 눈을 마주 보며 상냥한 미소를 띄웠다.

 

"잘 됐네. 데려다 줘."

"뭐?"

 

나기히코는 황당한 표정으로 리마를 바라보았지만 리마의 웃음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나기히코는 어쩔 수 없다는 제스처를 하며 말했다.

 

"그래, 그래. 알았어요, 퀸."

"잘 모시도록 해. 잭의 임무야."

"뻔뻔하네."

"먼저 나선 건 너거든?"

"네,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어갔다. 빗줄기는 한층 약해졌지만 장마철답게 여전히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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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록본 준비하느라 잠시 참여를 고사했던 낙림 전력 다시 참여합니다!! 워훜

사실 게을러서 오늘 참여하겠다는 계획을 한 건 아닌데

제시된 키워드를 보니 짧게 구상이 돼서 바로 핸드폰으로 적고 여기로 복붙했음

가끔 이렇게 연성신이 찾아오실 때가 있습니다(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