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마이] 흔해빠진 산책
W. 손도라
큐타로는 불 꺼진 점포 유리창을 거울 삼아 자신의 행색을 이리저리 살폈다. 무난한 무지 티셔츠에 적당히 어울리는 군청색 면바지, 그리고 집을 나서기 전 두어 번 접어 올린 바지 밑단까지 크게 모난 모습은 없었다. 머리를 매만지던 그는 문득 스스로가 우스워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하는 짓인지. 그렇게 혼잣말까지 뱉은 큐타로는 겨우 돌려둔 제정신과 함께 멈춰있던 걸음을 옮겼다.
자주 보던 공원의 입구가 보였다. 평소 러닝하러 자주 오던 곳이 왜인지 낯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복장보다는 보다 움직이기 편한 운동복 차림이었으니 말이다. 전날 밤 떨어둔 너스레와 다른 제 모습에 이제는 한심해질 지경이었다. 그냥 산책하러 나온 거여, 산책. 큐타로는 다시 평정심을 되찾았다. 동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친구를 보며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큐타로 씨, 먼저 와 있었네!”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모습에 어쩐지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어쩐지 주변이 미묘하게 더 환해졌다는 착각을 부를 만큼 특유의 밝은 분위기가 그에게 전해졌다.
두 사람은 간단한 인사말을 나눈 뒤 함께 공원을 거닐었다. 그들은 “밥 먹으려고 밥솥을 열었더니 밥이 없는 거여!”, “낮에 간장 사야 했는데 까먹었어!” 따위의 시시콜콜한 담소를 나눴다. 앞만 보고 걷던 큐타로의 시선은 곧잘 제 옆으로 향했다. 츠루기 마이는 몸선이 다소 가늘지는 몰라도 키가 작은 편은 절대 아니었다. 버거버그 큐타로라는 사람이 워낙 거구인 신체와 선수 생활의 흔적을 가진 터라 어쩔 수 없이 그의 옆에 서면 한없이 작아 보이게 만든다. 큐타로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항상 마이가 너무 작다는 편견을 지울 수 없었다.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그만의 시선이었다.
조잘조잘 일상을 주고받던 그들의 시야에 웬 초록색 고무공이 통통 굴러왔다. 큐타로의 고무공을 주워들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을까 싶은 남자아이가 머뭇거리며 서 있었다. 큐타로는 익숙한 듯 호쾌한 목소리로 아이의 경계를 풀었다.
“잘 받으래이!”
고무공은 느린 속도로 호선을 그리며 아이의 품 안에 쏙 안겼다.
“나이스 캐치여!”
아이는 가볍게 엄지를 들어 보이는 큐타로에게 경계 한 점 없는 천진한 얼굴과 감사 인사로 화답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마이는 큐타로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큐타로 씨는, 수염이 잘 어울리네.”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큐타로의 표정이 뒤이어 건네진 말에 조금 당황한 기색을 띠었다.
“수염 기른 남자는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큐타로는 다급히 말을 붙였다.
“그, 뭐, 아무나 어울리는 스타일은 아니제. 남자의 상징이여.”
“진정한 남자 큐타로 씨라는 거네?”
“나 정도면 훌륭하지!”
“흐응-.”
제법 자신 있게 말한 것이 무색하게도 큐타로의 속내는 혼란스러워졌다. ‘실은 수염이 별로인가?’, ‘그래도 곧장 물어보는 건 너무 바보 같지 않나.’ 마이는 이런저런 속내를 굴리는 그를 조금 앞질러 걸었다. 큐타로의 걸음 속도가 자신도 모르게 느려진 탓이 컸다.
잠깐의 이탈을 넘기며 그들은 재차 소소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속도가 다시 맞아떨어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주변이 한산해지고 풀벌레 소리만 간간이 귓가에 맴돌았다. 큐타로는 몇 번이나 반복되던 공원 돌기를 슬슬 끝내려 걷는 방향을 슬쩍 공원 밖으로 바꾸었다. 마이는 무던하게 그의 옆을 지켰다.
“밤 산책은 오랜만이었어! 큐타로 씨 덕분에 건강해진 기분-. 날도 선선해졌으니까 자주 나와볼까 봐.”
“밤길은 위험하니까 낮에 다니랑께. 요즘 세상이 얼매나 흉흉한디.”
“괜찮아, 괜찮아. 위험하지 않게 큐타로 씨가 막아줄 거야.”
“응, 그렇제, 응···. 응?”
맑은 웃음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마이의 모습을 보니 이제 큐타로는 번뇌를 지나쳐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타이밍 좋게 살랑거리는 밤바람에 마이의 머리칼이 흩날렸고, 은은한 달빛이 주변을 무던히 감쌌다. 마이가 머리칼을 살짝 귀 뒤로 넘기며 다시 그를 보고 눈웃음을 지을 때까지, 그 짧은 순간 동안 큐타로의 귓가에는 오로지 마이의 목소리만이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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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나이대 남녀는 별 거 아닌 밤 산책 하면서 썸 타고 연애한다
그러니 큐마이도 탑승 시켜주기ㅎㅎ
친구끼리 산책 하는 게 뭐 이상한가!로 시작하는 산책은 개뿔이다 스토리
쓰는 내내 얘네 썸 타는 거 지켜보는 CCTV 된 느낌에 즐거웠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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