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 시리즈/연성 20

[소스린] 게으름피우기

[소스린] 게으름피우기W. 손도라 “어이, 소스케.” “왜, 린.” “우리 오늘 장보러 나가기로 했잖아.” “그렇지.” “슬슬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그러네.” 이렇게 말하는 한 쌍의 커플은 이불과 함께 엉켜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말로만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나씩 읊으며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둘이 맞는 휴일이라 어젯밤까지만 해도 스몰 데이트나 집안일 등을 계획해놓았는데 잠에서 깨니 만사가 다 귀찮았다. 휴일이라서 그런 감도 없지 않아 있지만 분명 주 원인은 바로 눈앞에 보이는 난장판의 배경일 것이다. 구겨진 휴지조각에 널부러진 옷가지. 어젯밤 두 남자는 서로를 향한 뜨거운 마음을 꾹꾹 눌러두었다가 한꺼번에 터뜨렸다. 온전히 내비칠 수 없던 시간만큼이나 격정적인 밤을 보냈고, 사랑 나..

[소스린] 샤워 후 음료수 타임

[소스린] 샤워 후 음료수 타임W. 손도라 린은 샤워 후 방으로 돌아왔다. 금요일 오후 연습을 끝낸 시각은 다른 날보다 더 피곤하게 느껴졌다. 린은 그 순간에 휩싸여 바로 나태해지는 유형은 아니지만, 적어도 남들만큼의 기력 저하나 나른함은 느낀다. 나름의 처방법이 있다면 연습 후 바로 샤워를 하고 시원한 음료나 간단한 군것질을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린이 금요일을 마무리 하는 자신만의 규칙이기도 하다. 이번 금요일의 해소 음식은 탄산음료였다. 린이 집어든 음료는 이번에 어느 회사의 작품과 콜라보레이션으로 출시되었는지 상표 라벨에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아이랑 모모가 하도 귀엽다고 했던 것이 생각나서 캐릭터가 그려진 라벨을 골라 사온 콜라였다. 아이랑 모모에 하루 녀석까지 빠져든 캐릭터를 유심히 살펴보..

[마츠오카 린] 비보(悲報)

[마츠오카 린] 비보(悲報)W. 손도라 TV 화면에서 남자아이가 목에 메달을 걸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남자아이는 카메라를 의식한 듯 포즈를 잡았다. 뒤이어 다른 남자아이들이 뛰어와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한 채 포즈를 취했다. “저 애가 아빠야? 멋있다-.” 린은 아버지 토라이치의 옛 모습에 푹 빠져있었다. 지금 옆에 있는 아버지도 멋있는 아버지라며 은근히 자랑을 하기도 하는데, 화면 속의 어린 아버지도 그에 못지않게 멋있고 대단해보였다. 언젠간 아버지처럼 멋진 수영선수가 되리라, 그리고 금빛 메달을 아버지에게 보여드리리라 마음먹기를 되새겼다. “하하, 그래-! 아빠 멋있지?” “응!” * * * “다녀올게-!”“오늘은 수영 꼭 봐줘야 해요?! 꼭이에요!” 토라이치는 알겠다며 확실하게 새끼손가락에 복사까지..

[아사키스] 크리스마스 이브의 이브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라고. 아니야아아―!!!” 오늘은 12월 23일. 크리스마스 이브의 이브다. 크리스마스는 가족이나 연인에게만 좋은 날이라곤 하지만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어느 땐 가족과 함께 외식을 했고, 어느 땐 친구들과 모여서 시내 광장의 큰 트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늘도 그에 버금가는 추억을 만들고 싶었는데. “야마다 교수님, 대체 왜 이런 시련을···.” “악마야. 악마가 틀림없어. 다른 강의는 이 기간은 즐기라고 넉넉히 시간 주거나 아예 과제를 안 줬단 말이야! 이 수업 왜 듣게 된 거냐고.” “아사히가 이 강의는 시험 안 보는 강의라고 신나서 신청했잖아.” “과제 분량이 지옥 같을 줄은 몰랐지. 내 크리스마스―” 시험을 안 보는 강의는 너무나도 달콤한 ..

[나츠나오나츠] 아침이 되면

[나츠나오나츠] 아침이 되면W. 손도라 바깥은 이른 아침의 냉기가 도는 듯 바람이 나뭇잎을 계속 건드리고 있었다. 반면, 세리자와 나오의 자취방 부엌은 창밖에서 들어오는 햇살 덕인지 따스한 기온이 감돌고 있다. 부엌 한 편에서는 커피메이커가 은은한 커피향을 내뿜었다, 나츠야는 부엌에서 나는 소리에 슬쩍 눈을 떴다. 어제 오후, 포르투갈에서 돌아온 나츠야는 기념품을 한가득 안고 나오를 찾아왔다. 나오는 이런 나츠야가 익숙한 듯 저녁을 대접했고, 나츠야의 여행 후일담을 듣다 같은 침대에 누워 밤을 보냈었다. 나오는 나츠야의 인기척을 놓치지 않고 맞이했다. “일어났어? 커피 마실래?” 나츠야는 이불을 젖히고 덜 뜬 눈을 비비며 말했다. “설탕 많이.” 나오는 나츠야의 대답을 이미 짐작이라도 한 듯 설탕통에 스..

[아사키스] Kiss Of Justice

아사키스 합작 'Kiss Me If You Can' [아사키스] Kiss Of JusticeW. 손도라 요즘 참새들은 울음소리가 지나치게 시끄럽다. 오랜만에 아주 기분 좋은 술판을 보내고 달콤한 늦잠을 즐기고 있었는데, 참새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베란다 창틀에 옹기종기 모여 짹짹거리고 있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속에서 열을 올리고 있는 건 타당한 이유에서 나오는 현상이다. 나는 내 자취방 베란다 창틀을 내준 적이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날갯짓 소리가 한 번 들리더니 참새 울음소리가 더 강해졌다.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려 베란다를 보니 전부 합쳐 네 마리였다. 다시 말하지만 내 자취방 베란다 창틀은 참새들을 위한 쉼터가 아니다. 참새들에 집중하다보니 잠이 깼다. 참새가 네 마리, 어제 술판을 벌인 인원도 ..

[나츠나오] 세리자와 씨의 휴일

[나츠나오] 세리자와 씨의 휴일 W. 손도라 나오는 지금 놀라운 집중력으로 특집 다큐멘터리 ‘지구의 메시지’를 시청하고 있다. 소파에 등을 살짝 뉘이고, 팔짱을 낀 그의 모습은 언뜻 보면 휴일 오전을 평화롭게 보내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오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야무지게 다문 입과 진지한 눈빛에 보는 사람마저 긴장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세리자와 나오는 지금 자신에게 안성맞춤인 만족스러운 휴일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절정에 다다르고 있다. 인간의 생활패턴을 바꾸지 않으면 향후 100년 이내에 끔찍한 현상이 일어날 것을 예고하며, 그 장면을 3D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나오는 더욱 더 숨을 죽이고 화면에 몰두했다. 팔짱을 끼고 있던 그의 손은 어느새 턱을 만지작대며 바..

[나츠나오] 열

[나츠나오] 열W. 손도라 손에 아무 느낌이 없다. 나오는 칠판에 적힌 문장을 한 자 한 자 받아 적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노란 분필과 동그라미로 강조하면 그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강조한답시고 그은 밑줄들은 쓸 데 없이 여러 번 그어져 하나 같이 과한 존재감을 보이고 있었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점점 무너져가는 필기를 보며 자조했다. 다행히도 그 순간 수업 종이 울렸고, 주변은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이제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빠르게 온몸으로 퍼졌다. 오늘은 더 이상 펜을 쥘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미안. 오늘 들를 데가 있어서. 먼저 가볼게.”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학교를 빠져나왔다. 일부러 아무도 가지 않는 방향을 택했다. 빨리 집에..

[마코하루] 어느 새벽

[마코하루] 어느 새벽W. 손도라 손목을 이리저리 돌리고 흔들며 시간을 확인했다. 곧 있으면 새벽 2시. 집에 오자마자 쓰기 시작한 레포트는 아직 조금 더 써야 한다. 교수가 원하는 분량이 말도 안 되게 많다거나 구성하기 까다로운 주제가 아니니 금방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선 가장 마지막에 시작했던 레포트였다. 허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목이 잡혔고, 그 때문에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다보니 이런 늦은 시간까지 끌고 있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지금은 다행히 애먹었던 부분은 잘 풀어내어 이제 마지막 파트만 완성하면 된다. 찌뿌둥한 몸을 풀어주려 기지개를 켜는 순간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끝났어?” 하루카는 덮고 있던 이불을 옆으로 살짝 젖히며 작게 하품을 했다. 왠지 자신이 하루카를 깨운 것 같은 마..

[레이나기] 사탕

[레이나기] 사탕W. 손도라 일요일 오후 3시, 애매하다면 애매한 시간,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오후의 일부인 시각이다. 가족들은 모두 외출을 한 탓에 혼자 집에 남게 되었다. 그렇기에 집안이 조용한 건 아주 당연한 현상인데 왠지 이런 고요함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공부를 하기엔 최적의 환경인데도 도통 책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집중력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되는 스트레칭을 하고 잠시 가벼운 독서를 하는 등 갖은 방법을 다 써봤지만 오히려 머릿속에서는 이 상황과 전혀 관련 없는 생각만이 줄줄이 늘어가고 있었다.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다 싶어 하는 수 없이 책을 덮고 제자리에 꽂아두는데 문득 그 책상 가장자리에 놓인 사탕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막 개업한 카페에서 커피를 사고 받아온 덤이었다.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