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캐릭체인지(Shugo Chara!)/연성

[나기리마] 꿈에

손도라/핸디 2024. 3. 24. 07:40







[나기리마] 꿈에
W. 핸디





눈 앞에서 모난 곳 없는 평범함이 펼쳐졌다. 사람이 없으니 일을 하지 않는 텔레비전과 고요함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가전제품 모터 소리, 늘 제자리에 있는 거실 소파와 테이블. 사람이라고는 자신 밖에 없지만 리마에게는 이 풍경이 가장 익숙했다. 리마는 상황에 맞춰 평소대로 거실 소파에 몸을 맡겼다. 다만 소파 한 구석에 놓인 텔레비전 리모컨은 건드리지 않았다. 리마는 초점 없는 눈으로 생각했다. 이왕 꿈을 꿀 거면 좀 재밌는 상황이거나 하다 못해 하늘에서 하염없이 떨어지는 요상한 내용이었음 좋았을 텐데.

"이왕 꿈을 꿀 거면 좀 재밌는 꿈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어디선가 들리는 목소리에 리마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하다 못해 하늘에서 하염없이 떨어지는 꿈이라거나···."
"누구야? 어서 나와!"

리마의 머리 위로 약간의 온기와 함께 그늘이 졌다. 사르륵 떨어지는 보랏빛 머리카락을 따라서 올려다보니 몹시도 익숙한 얼굴이 리마를 내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꿈은 키 크는 꿈이라던데. 알고 있어?"

그 뒤로는 놀랄 틈도 없이 알람소리와 함께 꿈에서 깨고 말았다. 참으로 맥 없는 결말이었다.

* * *

오늘의 꿈은 제 방 침대에 누워있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어딘가 붕 떠있는 느낌과 왠지 모를 이질감이 꿈이라는 것을 자각시켜주었다. 리마는 꿈을 자주 꾸지 않는 편이었다. 이전에 꿨던 어처구니 없는 꿈을 꾼 지도 벌써 2주가 지났다. 누군가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자꾸만 눈엣가시처럼 밟혀대는 통에 하루하루가 정신 없이 흘러갔다는 것 말고는 특이할 것 없는 일상을 보냈다.
무게 없는 생각에 잠겨있던 리마는 불현듯 곁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움직였다. 눈엣가시로 여기던 그 누군가가 태연한 얼굴로 마주 누워서는 인사를 건넸다.

"안녕, 리마? 일어났니?"

리마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너 뭐야? 왜 여기 있어?! 빨리 나가!"
"잠깐, 잠깐만!"

리마는 당황하며 몸을 뒤로 뺐다. 몇 번 움직이니 손바닥에서 느껴져야 할 이불의 감촉은 온데간데 없이 아무것도 짚이지 않았다. 나기히코는 침대 밑으로 떨어지려는 리마를 재빨리 잡아당겼다. 리마는 힘 없이 그의 품으로 넘어갔다. 피부에 닿는 모든 것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괜찮아?"

리마는 빠르게 그에게서 벗어나 침대 구석으로 몸을 밀어넣었다. 옆에 있던 베개까지 끌어와 눈을 제외한 얼굴을 감췄다. 잠깐이었지만 안심했던 자신이 창피해서 미칠 것 같았다. 한껏 경계심 강한 눈빛으로 쏘아붙였음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더 이상 다가가지 않겠다는 손짓으로 자신을 안심시키는 여유로움이 더 눈꼴이 시렸다. 리마는 매몰차게 말했다.

"나가."
"···."
"나가라는 말 안 들려? 여긴 내 방이야."
"그럴 순 없어, 리마."
"신고할 거야."
"이건 네 꿈이잖아."

리마는 잔뜩 줬던 힘을 풀고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 지금 이 상황은 모두 꿈이다. 그것도 남의 꿈이 아닌 자신의 꿈. 리마의 표정이 풀어지자 나기히코의 표정도 차츰 풀어졌다. 나기히코는 그 뒤로 더 말을 붙이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리마는 눈을 이리저리 도르륵 굴리며 주변을 살피고 생각을 정리했다. 마지막 시선이 같은 침대 위에 앉아있는 나기히코에게로 멈춰섰다. 시선을 받아든 나기히코는 무언가 할 말이 있냐는 듯이 눈을 맞춰주었다. 평소라면 자리를 피하거나 날카로운 말로 그를 쫓아내려 했을 텐데 왜인지 이곳에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대신 사뭇 안정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네가 여기 왜 있어?"
"그야, 이건 네 꿈이니까···."
"···."
"나는 모르지."

방 안이 정적으로 가득 찼다. 똑딱거리는 시침 소리도, 이불이 맞닿아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리마에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꿈이니까, 꿈이라면 마음대로 해도 되지 않을까. 꿈은 이유도, 맥락도 심지어는 마음까지 없을 수 있지 않나. 모든 것이 허용되고 이해 받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더불어 꿈의 주인은 자신이었다. 이렇게 완벽한 당위성까지 찾아내자 리마는 자신도 모르게 꾹꾹 눌러담은 무언가를 슬며시 풀어헤쳤다.

"너 말이야. 요즘 엄청, 엄청 신경 쓰여."

나기히코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평소와 같이 유연한 눈빛으로 눈을 맞춰줄 뿐이었다. 리마는 흘끔흘끔 그와 눈을 맞추며 다시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네가 자꾸 눈 앞에 보이니까. 신경 쓰이잖아···. 무, 물론 아무랑 넌 친구고, 나도 아무의 친구니까 자주 보는 건 당연하지만···! 그치만···, 이상해. 너 싫어."

이번엔 나기히코가 시선을 잠시 거두었다. 리마는 얼굴을 완전히 파묻었다. 베갯잇 사이로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내가 싫어?"

예상치 못한 질문에 리마는 다급히 고개를 들었다. 나기히코는 조금 쓸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니라고, 싫지 않다고 대답해야 할 것만 같았다. 마음과는 달리 입술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리마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나기히코는 리마의 대답을 기다려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

나기히코의 연이은 질문으로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에게 고정되었다. 리마도, 나기히코도 눈을 떼지 않은 채 시간만 흘렀다. 리마는 깨진 틈새로 물줄기가 흐르듯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까이 와 줘."

나기히코는 말 없이 리마의 곁으로 다가왔다. 또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하라는 눈짓을 건넸다. 리마는 베개를 꼭 쥐고 있던 오른손을 풀어 그의 옆으로 떨어뜨렸다. 나기히코는 조심스레 그의 손가락 사이로 제 손가락을 빠짐없이 엮었다. 그리고 물었다.

"또?"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또? 더 있나? 목 끝부터 얼굴 전체가 타오르는 느낌에 제정신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무언가 말해야 할 것만 같았다. 더 있는 것 같아도 그게 뭔지 도통 입 밖으로 나오려들지 않았다. 그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느낌에 잡은 손을 놓치지 않으려 힘을 주기만 했다. 리마는 눈을 꼬옥 감았다. 그 순간 귓가에 전혀 다른 소음이 흘러들어왔다. 마치 지하철에 타고 있으면 들릴 법한 열차 소음이었다.

리마는 살며시 눈을 떴다. 핸드폰을 들고 열심히 키패드를 두드리거나 잠을 청하며 눈을 감고 있는 사람들이 듬성듬성 앉아있었다. 왼손바닥에서 가죽가방의 감촉이 느껴졌다. 가방을 매만지며 잠시 꿈인지 현실인지를 구분했다. 차갑고 맨들맨들한 가죽의 촉감이 선명했다. 확실한 현실이었다. 곧 교내에 필요한 비품을 사고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깜빡 잠이 들었던 것까지 기억해냈다. 혼자 비품을 사러. 아니, 혼자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리마는 그제야 오른손에서 느껴지는 낯선 감각을 인지했다. 조심스레 옆을 돌아보았다. 나기히코가 가만히 제 옆을 지키고 있었다. 그의 왼손이 리마의 오른손과 빈틈없이 얽혀있었다. 보랏빛 머리카락 사이로 살짝 보이는 귀와 뒷목이 왜인지 붉게 달아올라있었다. 리마는 거기까지 눈치챌 여유가 없었다.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두고 눈을 감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칠 줄 모르고 달아오르는 낯빛을 외면하며 이 사태의 해결법을 그에게 떠넘기는 것이 최선 중의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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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니네 뭐 하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썼지만 내 취향으로 귀엽다...
증말증말 귀여운데 100% 표현할 수가 없네
나기리마 마지막 연성이 1월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서 현생을 등지고 휘갈겨 봄
동명의 노래 제목과는 30% 정도 연관이 있습니다
쓰다가 결국 내 취향이 되고 말았기 때문에ㅇㅇ...
뒷 내용도 쓰고 싶은데 등지는 데도 한계가 있어서 다음으로 미룬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