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캐릭체인지(Shugo Chara!)/연성

[나기리마] 그들의 밤하늘

손도라/핸디 2020. 6. 17. 00:07

 

 

 

 

[나기리마] 그들의 밤하늘

W. 손도라

 

 

 

 

리마의 볼이 잔뜩 부풀었다. 그러나 짜증 가득한 얼굴과는 달리 그의 작고 하얀 손은 제 몸을 가리는 박스를 야무지게 받치고 있었다. 나기히코는 그저 살며시 눈치를 볼 뿐이었다. 세이요 학원의 이사장은 매우 독특한 사람이다. 이상한 시점에 튀어나오질 않나, 학교 지하에 미로를 설치하지 않나. 가디언에게는 아주 좋은 어른 중 한 명이지만 그의 독특함을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독특한 이사장께서 그들에게 건넨 부탁이 시발점이었다. 이사장은 갑자기 로열가든으로 찾아와 사람을 찾더니 플라네타리움까지 짐 옮기는 데에 도움을 구했다. 리마는 이사장이 야속했다. 하필 그런 부탁을, 로열가든에 사람이 없을 때 하다니. 아니, 아주 잠깐 나기히코와 단 둘이 있는 그 순간에 찾아온 거였지. 리마의 손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플라네타리움까지 옮길 짐은 그다지 많지 않아 한 번만 다녀오면 족했지만 나기히코와 단 둘이 일을 하는 것이 너무나도 고까웠다. 충분히 들 수 있는 짐인데 굳이 자기가 더 무거운 짐을 들어주겠다는 말조차 생색으로 보였다. 리마는 이제 그의 능력을 신뢰하고 동료로 받아들였지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아무를 데려가는 성가신 애‘라는 타이틀을 무시하는 일은 리마가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사장의 부탁을 거절하기엔 그는 너무 성실하고 착했다.

 

“적당히 여기다 놔두면 되겠지?”

 

나기히코는 박스를 내려놓으며 돌아보았다. 리마는 나기히코의 시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미로 박스를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기히코는 살짝 기지개를 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플라네타리움 내부는 조명이 켜지지 않았는데도 미세한 빛을 띠는 것이 도시에서 보는 어렴풋한 밤하늘 같았다.

 

“견학으로 왔을 땐 사람이 많아서 잘 못 느꼈는데, 꽤 분위기 있네.”

 

리마는 갑자기 무슨 시덥잖은 소리를 하냐는 눈빛으로 나기히코를 응시했다.

 

“다 했으면 빨리 돌아가자. 피곤해.”

“너무 매정하네.”

 

나기히는 시선을 위로 돌리며 대답했다.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옮기던 나기히코는 순간 밤하늘과 이질적인 무언가를 발견했다. 진한 검은색의 작은 버튼이었다. 스위치는 덮개가 열린 채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모를 지나치기 쉬운 자리에 있었다. 나기히코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조용히 스위치를 위로 올렸다. 출입구를 향해 걸어가던 리마는 갑자기 환해진 주위를 보고 당황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뭐야? 뭐한 거야?”

“아, 조명 스위치였구나.”

 

한 순간에 아스라이 빛나던 수많은 인공 별들이 약속이나 한 듯 자신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누가 봐도 시선을 압도하는 아름다움에 놀란 눈으로 나기히코를 쏘아보던 리마조차 맑은 우주에 시선을 빼앗겼다. 나기히코 또한 플라네타리움의 경치에 압도되어 가만히 별들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잠시 동안의 정적이 이어졌지만 결코 어색하지 않았다. 그들의 간극을 플라네타리움만의 우주가 메워주고 있었다.

밤하늘을 감상하던 리마의 시야에 보랏빛 머리칼을 가진 아이가 들어왔다. 그의 이성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상황 파악에 열을 올렸다. 리마는 입을 열었다. 난 간다. 입을 열었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목구멍까지 다다랐던 한 마디가 서서히 사라졌다. 보랏빛 긴 머리에, 부드럽지만 올곧은 눈을 한 남자아이는 플라네타리움의 일부인 것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적어도 리마의 무의식은 그렇게 생각했다. 리마는 내뱉지 못한 한 마디를 내보내려 애썼다. 잠시 동안이지만 시선을 앗아간 저 남자애에게 괜히 심술이 났다. 이윽고 리마의 입술 밖으로 무언가 흘러나왔다.

 

“···예쁘다.”

 

리마의 시선은 그를 향해 고정되어있었고, 본인은 인지하지 못한 영문 모를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기히코는 놀란 눈으로 리마를 바라보았다.

 

“응? 방금 뭐라고···.”

“아, 아니, 여기 예쁘다고. 하늘이.”

 

리마는 다급하게 기색을 감추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갑작스럽게 차오른 뜻밖의 당황을 감추기엔 아직 미성숙했다. 리마는 최후의 수단으로 몸을 측면으로 돌려 자신의 얼굴을 감추었다. 조명을 받은 긴 금발이 은은하게 반짝였다. 나기히코는 그런 리마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작은 몸집에 그보다 더 큰 빛을 갖고 있는 아이. 나기히코는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했다는 자신에 스스로 놀란 나기히코는 잠시 고민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그는 마침내 결론을 내리고 자유에 사고를 맡겼다.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나직이 말했다.

 

“예쁘다.”

 

 

 

 

----------------------------------------------------------

 

키워드 '우주'로 연성했습니다!

오늘은 기분이 좋아서 해소할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그걸 연성으로 하는 충실한 오딲꾸ㅋㅎ

나기리마 너무 좋다....정말 좋다...(앓앓

키워드는 우주지만 왠지 밤하늘이나 플라네타리움이 더 어울리는 내용이 됐네요

그치만 우주의 일부분을 보여주니까 괜찮지 않을까...!(양심리스

아무튼 내가 즐거웠으면 됐지 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