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도라/핸디 2020. 6. 15. 17:06

 

 

 

 

[이쿠아무] 봄비

W. 손도라

 

 

 

 

손을 내미니 둥그스름한 물기가 하나, 둘 맺혔다. 물방울이 늘어날수록 밀려나는 빗물들에 손가락을 살짝 굽히니 손끝으로 스르륵 내려앉는 모양새가 퍽 즐거웠다. 번거롭지 않고 무난한 날씨는 햇볕이 적당히 내리는 맑은 날씨지만, 가끔씩 산책 중에 하늘빛이 바뀔 때면 손바닥을 가만히 펼쳐보는 버릇이 생겼다. 손 크기가 지금의 반절 밖에 안 되던 시절부터 즐기던 일종의 작은 놀이였다. 흐름이 이끄는 대로 맺히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빗방울들을 보고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옥죄던 무언가가 잊혀졌다. 잠시 동안의 작별을 건넸을 때, 가슴이 미어지는 한편으로 그 시절의 빗방울이 스며들었다. 이륙한 지 몇 시간이나 지났기에 보이는 것은 제각각의 모양을 가진 구름덩이뿐이었다. 비가 내릴 틈도 없는 하얀 구름을 보니 단편적인 무언가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맨날 학교 땡땡이 치고 풀밭에 누워있는 사람보다는 성실하거든?”

 

그저 분홍빛 머리칼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응시했다. 그는 살며시 다가가는 손을 거부하지 않았고 자신의 주장을 내비치기에 바빴다. 톡하고 건드렸을 뿐인데 정직하게 반응하는 눈과 입술이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바람에 흔들리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빙글 돌려보며, 그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가장 따듯한 풍경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때 그 시각을 내밀었을 것이다. 구름을 물들이는 대신 가만히 안아주는 봄빛이었다.

그 날 밤, 잠결을 틈 타 이상한 꿈이 스며들었다. 꿈이라면 무의식의 욕구대로 기억의 조각이 섞여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그때의 순수한 격려는 절대 의심할 수 없었다. ‘드디어 찾았네? 이쿠토는 분명 잘할 수 있을 거야. 힘내.’ 그 이후로는 더 이상 과거에 안주하지 않았다. 미래를 함께할 그릴 그를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주제에 감히 기대고 싶은 따뜻한 목소리였다. 눈을 뜨니 부슬비가 창문에 내려앉고 있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창문을 열고 살짝 손을 내밀어보았다. 이제는 잠시 머무르다 사라지는 빗방울들을 아쉬워하지 않았다.

현관을 나서며 하늘을 향해 핸드폰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전송 버튼을 누른 뒤 여느 때보다 힘이 실린 걸음으로 그를 찾으러 가려던 찰나, 깨끗한 콘크리트 바닥이 봄을 담은 빗방울에 차츰 젖어갔다. 이쿠토는 가방에 있는 우산을 꺼낼까 고민하다 저 멀리 보이는 빨간 우산을 보고는 손을 거두었다. 빨간 우산 사이로 보이는 그의 봄빛이 그의 걸음을 재촉했다. 하루도 잊은 적이 없던 나의 봄. 이쿠토는 꿈에 그리던 봄을 향해 나아갔다.

 

알림이 울리는 핸드폰을 켜니 웬 하늘 사진만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아무는 피식 웃으며 낮게 읊조렸다. “빨리, 보고 싶다.“ 항상 이상한 문자를 보내는 발신자가 뭐 그리 그리웠는지 제 자신에게도 웃음을 날렸다. 그 순간 느슨하게 어깨에 걸치고 있던 우산이 높이 올라가고 어깨와 손이 가벼워졌다. 그리고는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타고 아무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내가 그렇게 보고싶었어?”

 

그는 이제 낡은 빗방울 대신 따뜻한 봄비를 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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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비'로 연성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이쿠아무

평소랑 다르게 쉬이 마무리 짓지 못해서 던져질 뻔했던 글인데 어떻게 무사히 탈고를 했네

잘했다 나 자신....(셀프쓰담

이쿠아무도 너무 좋아해요 흑흑 하지만 무서워서 메이저가 되어달라고는 못 하겠어...

아무가 성인이 되고, 이쿠토가 귀국한 뒤 처음으로 만나는 날을 생각하며 썼습니다

이쿠토에게 아무는 봄이었으면 좋겠어요

여름에 봄 얘기하기 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