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도라/핸디 2024. 9. 25. 16:41

 
 
 
[이쿠아무] 습관
W. 핸디
 
 
 
 
이쿠토는 손에 들린 메모지를 다시 살펴보았다.
 
- 주방세제 리필용 1L
- 대파
- 마른 멸치 1봉지
- 달달한 거
 
동글동글하고 작은 글씨체로 야무지게 적힌 구매 목록이었다. 하나씩 조용히 되뇌다가 맨 아래 구석에 쓰인 작은 추신을 보고는 그만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쌀과자는 달지 않아 (* `ス´)
 
단호하게 명령조로 내쫒은 사람치고 너무 귀엽지 않나. 아무 무늬 없는 연노랑색 메모지라고 손수 그려넣은 이모티콘이 왜인지 세상에서 가장 솔직하게 읽혔다. 내려가지 않는 입꼬리를 가까스로 숨기고는 큰 보폭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처음은 과자 코너, 두 번째는 오늘의 세일품 코너 그리고 세 번째 건어물 코너까지 막힘 없이 장바구니를 채운 이쿠토는 신선식품에서 잠시 멈췄다. 왼쪽엔 깔끔하게 손질된 대파, 오른쪽엔 손질되지 않은 흙대파가 쌓여있었다. 이쿠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채소용 저울 화면에 표시되는 전자시계로 현재 시각을 확인하고는 왼쪽으로 손을 뻗었다.
곧바로 계산대로 향하던 이쿠토의 눈에 불현듯 아기자기한 냉동 붕어빵 박스가 눈에 띄었다. 시선을 날카롭게 낚아챈 영업직원이 말을 걸어왔다.
 
“팥이랑 고구마소가 가득 들어서 요새 인기예요. 여기 시식용.”
“감사합니다. 하나 주세요.”
 
그는 시식용으로 소분된 붕어빵 꼬리를 우물거리며 장바구니에 담긴 냉동 붕어빵 박스를 만족스럽게 받아들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누군가 큰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 허어?! 뭘 그렇게 많이 사왔어?!!”
“네가 사오라는 거. 엄청 무거워.”
“무슨 소리야. 전골 재료 빠뜨린 것만 적어놨는데.”
”넌 전골에 세제도 넣냐.“
”···주방세제는 설거지 할 사람이 사와야지!“
”자기 돈 아니라고 막 시키네. 악덕이야.“
”아핫-, 무겁겠다. 이리 줘.“
 
이쿠토는 거실 바닥에 널부러진 천 뭉치를 들어보이며 물었다.
 
”이거 지금 달 거야?“
”어, 응. 손이 안 닿아서 너 올 때까지 기다렸어.“
”한참 더 커야 한다니까.“
”대체 얼마나 더 커야 만족하실 건데요.“
”한 2m 30cm 정도···.“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아무는 봉투 안을 대충 훑어보고는 곧장 이쿠토에게로 다가왔다. 이쿠토가 낮은 스툴에 올라가 커튼봉을 설치하는 동안 커튼 뭉치 밑에 깔려있던 고리와 고정 나사 등등의 포장지를 빠르게 제거하고 이쿠토의 손짓에 맞춰 하나씩 건네주었다. 설치가 끝난 커튼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아무가 베란다 밖으로 나섰다. 고심 끝에 고른 이중커튼의 모양새가 밖에서도 보기 좋은지 확인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이 사뭇 설렘으로 가득했다. 햇볕이 은은하게 들어 어스름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주 익숙한 그림자 앞에 이쿠토는 말문이 막혔다. 이 순간 그의 눈에는 유럽 등지에서 찬사가 마를 날 없는 여러 천사 동상들이 전혀 부럽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황당한 감상평이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좋아, 후기사진이 별로 없어서 걱정했는데 잘 산 것 같아. 수고했어!“
”응, 예쁘네.“
”······.“
”······.“
”···뭐, 뭐야.“
”뭐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이쿠토의 품 안에 가둬진 아무가 물었다. 이쿠토는 아랑곳하지 않고 편하게 자세를 고쳐 더 안정적으로 그를 안았다. 자신의 품 안에서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뒷목과 뺨이 서서히 달아오르는 걸 감상하는 데 더 급급했다. 경직된 손을 꼼지락거리는 것까지 빠뜨리지 않고 눈에 담았다. 아무가 주방에 놓인 봉투를 풀어헤치는 동안에도 이쿠토는 그에게 찰싹 붙어 성가시게 만들었다.
 
”붕어빵? 맛있겠다. 모나카 같은 거 사 올 줄 알았는데.“
 
아무도 크게 저항하지 않고 묵묵히 제 할 일에 집중하는 척하며 온 신경을 그에게 쏟았다. 그랬던 그가 마트 봉투에 담긴 것 중 가장 부피가 큰 물건을 집어 들었을 때였다.
 
”···마른 멸치?“
”······.“
”1kg나···?“
”···마른 멸치, 국물용.“
”나 혼자 사는데, 1kg를···, 언제 다 먹어!! 이 바보고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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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메이커 '백허그', '커튼 뒤에서', '천사'로 연성했습니다!
마른 멸치에만 이상하게 손이 커지는 이쿠토, 한두 번이 아니라는 설정으로ㅋㅋㅋㅋㅋ
1인 가구에 마른 멸치는 300g도 많아
개적폐지만 쓰면서 행복했으니 만족스럽습니다 히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