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죽어(Kimi ga Shine)/연성

[케이사라] 오늘의 수수께끼

손도라/핸디 2023. 11. 24. 22:17

 
 
 

[케이사라] 오늘의 수수께끼
W. 핸디
 

 
 
시간을 확인하지 않아도 확연히 늦은 시각, 소파에 기댄 건지 서로에게 기댄 건지 모호하게 붙어있던 두 사람의 간격이 아주 조금 좁혀졌다. 좁혀진 의미는 딱히 없었다. 케이지와 사라는 무난하게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특별할 것 없는 저녁 식사를 함께 해왔다. 딱 지금처럼 일찍 잠들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할 일이 없다면 별다른 합의가 없어도 텔레비전 앞에 나란히 앉아 시간을 죽이기도 한다. 누구나 공감할 평범함의 극치였다. 애매한 심야의 텔레비전은 그들의 관심을 끌 만한 프로그램을 보여주지 않았다.
채널은 돌고 돌아 희미한 기억 속에나 남아있는 한 케이블 채널에서 잠시 멈췄다. 익숙하지 않은 타국의 언어가 흘러나오고 그에 맞는 일본어 자막이 표기됐다. 이내 화면에는 자동차 앞 좌석에 나란히 앉은 남자와 여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케이지는 그 속에서 다소 이질적인 존재감을 보이는 부착형 사이렌 소품을 놓치지 않고 버튼에서 손가락을 뗐다. 일찍이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고 케이지의 굵직한 손마디에만 관심을 쏟던 사라가 말했다.
 
“수사물일까요?”
“아마도.”
 
사라는 케이지의 얼굴을 흘긋 훔쳐봤다. 사라의 기준으로 볼 때 출타했던 케이지의 집중력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았다. 사이렌만 빼면 평범한 멜로드라마 아닌가. 사이렌 하나에 반응한 연상의 연인이 왠지 장난감을 목격한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다. 사라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숨기며 똑같이 화면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선배, 이별과 이 별은 한 칸 차이인 거 아세요?”
 
똘망한 눈빛을 한 여자배우가 대사를 읊었다. 일순간 케이지의 집중력이 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경찰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했는데 이제 사이렌은 더 이상 화면에 잡히지도 않았다. 대략 로맨스 서사가 진행되는 장면이라고 판단되자마자 그의 집중력이 사라지는 건 당연했다. 케이지는 다시 리모컨 버튼을 연타했다.
 
“엣.”
“어.”
 
채널이 바뀌자 이번에는 사라가 작게 반응했다. 황급히 채널을 원상복구 시킨 케이지가 머쓱하게 물었다.
 
“보고있었어?”
“아뇨. 집중해서 보진 않았는데 궁금한 게 있어서요. 잠깐만요.”
 
이번에는 케이지가 사라를 관찰했다. 자막을 읽는 자색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종종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사이렌보다 배는 흥미로웠다.
 
“우리 사라, 지금 뭐가 걸리는 걸까. 궁금하네.”
“조금 전에 ‘이별과 이 별은 한 칸 차이’라는 대사가 나왔잖아요. 뭔가 수수께끼 같은 느낌이었어요.”
“거기에 꽂힌 거군. 경찰아저씨는 저 나라 언어를 잘 모르는데···.”
“번역은 직역된 것 같아요. 배우들 표정을 보니까 뭔가 중요한 대사 같은데.”
“그렇다면 우리들의 친구 번역기씨를.”
 
케이지의 힌트에 사라는 재빨리 소파 손걸이에 버려져있던 스마트폰을 켰다. 케이지의 시선은 계속 사라의 표정에 머물렀다. 이리저리 움직이던 하얀 손가락이 멈추니 사라의 얼굴에 ‘이거다’라는 말을 대신하는 힘 있는 미소가 지어졌다.
 
“언어유희였네요.”
“나름 임팩트 있는 대사였구나.”
 
수수께끼를 해결한 두 사람은 이전보다 조금 더 흥미를 갖고 화면에 집중했지만 드라마는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았다. 화면은 그 대사 한마디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낡은 전개와 연출만이 가득했다. 그들이 기대하는 박진감 넘치는 수사 장면도, 풀고 싶게 만드는 사건도 전혀 알려주지 않고 오직 등장인물의 개인 사정에만 집중됐다. 앞뒤 사정을 모르는 시청자로서 당연히 관심 두기 힘든 상황이다. 케이지는 조금 고민하며 사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같은 순간 사라도 약속이나 한 듯 케이지와 눈을 맞췄다.
 
“우리 사라, 그거 알아? 이런 상황에 어울리는 드라마 대사가 있어.”
“뭔가요?”
“여기 재미없지? 같이 빠질까?”
“작업 멘트네요.”
“귀여운 여자아이한테 하는 대사지.”
“오늘만 넘어가드릴게요.”
“크크크,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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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죽으로는 다른 분들한테 받은 키워드로 연성하기가 처음이군요
익명 푸슝으로 받은 '이별과 이 별은 한 칸 차이'로 써봤습니다
항상 '이런 걸 원하는 게 아니었을 텐데...' 하고 마무리 하던 버릇도 같이 부활시키기
분명 플롯은 이별이라는 단어를 두고 대화하며 지들끼리 로맨스 따로 찍는 케이사라로 마무리 됐었는데 어째선지 또 맨날 굽는 일상로맨스 주 전공으로 끝나버림ㅋㅋㅋㅋㅋㅋㅋ
분량 길어져서 본능적으로 노선 변경한 것 같음...(합리적 의심
드물게 플롯 상태에서 제목도 지어놨는데 당연히 탈고 상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목이기에
또 후기 비슷한 주절거림 쓰면서 제목 뭘로 할지 고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