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죽어(Kimi ga Shine)/연성

[케이사라] Brakeless

손도라/핸디 2023. 10. 17. 22:34

 
 
[케이사라] Brakeless
W. 핸디
 
 
 
 
시노기 케이지는 희뿌연 창밖을 응시하며 커피잔 손잡이를 매만졌다. 그의 시선은 누군지도 모를 불특정다수의 행인들을 향해있지만, 머릿속에 입력되는 장면은 전혀 달랐다. 핸드백 틈 사이로 보였던 푸른 상자는 소유자의 분위기에 비해 몹시 이질적이었다. 빌어먹을 형사의 눈인지 감인지가 이 한순간만으로 답을 도출시키고 말았다. 답을 정해두고 움직이는 짓은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임을 잘 알고 있어도 이미 나온 결과는 쉽게 파기되지 않았다. 그의 모든 데이터베이스가 하나만을 가리켰다.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졌다면 늘 그랬던 것처럼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을까.
 
“...미안, 사라.”
“네?”
 
하지만 시간은 보통 아군이 아닌 경우가 많다. 적군이거나 중립이거나. 시간이 끄는 대로 어느새 돌아온 자리의 주인과 시선이 맞았다.
 
“그···, 내가 조금 먹었거든. 사라쨩의 케이크.”
“···티 안 나게 드셨네요. 더 먹어도 돼요.”
“크크, 감사합니다.”
 
찰나의 순간 너와 나는 동요했다. 애석하게도 서로 다른 두 개의 파동은 같은 궤를 그려나갔다. 이것만은 억측도 비약도 아니었다.
 
케이지는 그 마음을 꽤 오래전에 눈치챘다. 단지 생각을 구체화 시키지 않고 능청스럽게 미뤄왔다. 어떤 의미로는 이마저도 하나의 선택이었다. 네가 보낸 시간과 앞으로 가질 시간까지 나 같은 사람의 시간과는 다르니까. 우리는 딱 여기까지가 좋은 거야. 같은 선을 달렸던 때도 분명히 있었지만 안이하게 인정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감히 무슨 자격으로’. 현실은 그리 편하지 않다.
 
“케이지 씨, 저···.”
“···날이 많이 흐리네.”
“아, 그렇네요.”
“슬슬 돌아갈 시간이야, 우리 사라.”
 
비겁하게도 이번만큼은 틈을 내어주지 않았다. 이제는 기척까지도 티가 나는 동요를 티가 나게 모른 체했다. 집으로 데려다주는 20분 남짓 시간에도 어딘가 아슬아슬한 스몰토크가 오갔지만 그뿐이었다. 선택에 따른 규칙이다. 케이지는 천천히 액셀을 밟았다. 곧장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잠시 서 있던 모습이 사이드미러 한구석에 비쳤다. 그제야 피하지 않고 마음껏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자신을 비웃었다.
추적추적 앞유리를 때리는 굵은 빗방울에 새빨간 빛이 번졌다. 케이지는 횡단보도에 반대차선까지 아무도 보이지 않는 건널목에서 멍하니 신호가 바뀌기만을 기다렸다. 느슨하게 얹어둔 스틱에서 손을 잠깐 떼니 낯선 감촉이 손날에 닿았다. 낯설지 않은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신호등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였다. 그는 다시 스틱을 움직이고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시노기 케이지는 눈에 띄게 동요했다. 아무도 없는 차 안에서 그의 시선은 여전히 희뿌연 창밖을 향해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티끌만큼 사소한 부분까지 빠짐없이 흘러갔다. 귀엽다거나 예쁘다는 표현으로 어물쩍 무마했던 순간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케이지는 깨달았다. 전부 자신이 남긴 흔적임에도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하고 넘겨왔다. 이제 모든 단서가 일제히 한 곳을 가리켰다. 그렇다면 인정해야지. 복잡한 억측도, 비약도 아닌 온전한 사랑을 품고 말았다고. 스스로에게도 품을 수 없게 되려 매도했던 것을 품었다고. 별 대단한 마음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랑을 품었다. 시노기 케이지는 그렇게 자신을 온전히 자각했다. 늘상 고민하던 방법과는 전혀 다른 갈래로 본인이 아닌 타인을 통해 마주하게 된 이 마음과 홀로 마주했다. 일방적으로 지키겠다는 신념이 맥없이 무너졌다. 나를 사랑할 순 없어도 그에게만은 온 힘을 다하고 싶다. 또다시 주제를 알라는 생각이 스친 것 같지만 핸들 방향은 이미 생각을 앞질렀다. 이번에야말로, 다시는 주어지지 못할 이 기회 앞에서 강력히 피력했다. 옆에 설 자격부터 망설임 없이 안을 자격까지 전부 원한다. 시노기 케이지는 치도인 사라의 전부를 원한다. 치도인 사라와 맞닿는 모든 자격에서 절대 탈락하고 싶지 않았다.
다소 거칠게 닫힌 차 문 소리와 초인종 벨소리가 엇비슷하게 울렸다. 벨소리가 잦아들고 인터폰에서 잘 아는 음성이 들리기까지의 시간이 빗소리와 함께 묻혔다. 영락없이 군데군데 젖은 몰골로 다듬지 못한 마음을 전하게 될 미래만을 겨우 짚으며 케이지는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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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아저씨 안전운전 했습니다
적폐와 날조를 경계하며 게으름 콤보로 60%를 써뒀음에도 한 달 넘게 묵혀둔 글을 드디어 탈고했다
적폐면 적폐인 대로 인정하고 꿋꿋하게 밀고 가는 게 건강한 오타쿠다
그냥 차 안에서 땅굴 파는 케쥐가 보고싶었음